길 없는 외로운 숲에는 기쁨이 있다.

        누구도 방해 받지 않은 그곳.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밤별들을 더 사랑할 뿐이다

                       ㅡ 로드 바이런(Rord Byron)

 

 

 

좋은 등산이라고 하면, 그것은 어떻게 보면 종교적 경험과도 매우 유사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뭐랄까 어느 적막한 밤에 홀로 외로이 깊은 고백(속죄)의 눈물 같은 것일 수도 있겠고,

또 어느 때는 양팔에 날개라도 돋은 듯 몸이 가벼울 때도 있을 것이며,

또 슬플 때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렇게 스스로의 편에 외로이 서서성찰하는 자세이겠지요.

그래서 산이 주는 고마움이 무한하기에 우리 산사람에게 산은 스승이자 좋은 친구입니다. <유학재의 산행이야기 중에서>

 

 

 

 

                        꽃은 / 저만치 서서 / 향기를 전하고 / 눈길을 줄 뿐 / 말하지 않는다.
                        말은 할수록 / 외로워지고 / 사람은 알수록 / 슬퍼지는 것을 / 꽃이 알까마는
                         꽃처럼 살지 못해 / 나는 늘 아프다.
     <예창해 '꽃 '>

 

 

 

 

1월의 끝을 산에서 보냈다. 연이틀 내리.

석골사에서 문바위 능선을 타고 억산으로 가는 코스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루트.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한 벗들과 오르는 산길에 봄이 벌써 마중나와 있다.

저 멀리 가지북릉은 아직도 얼어붙어있건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 여백이 많고 시원시원한 그림.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가를 느낄수 있는... 

 

 

 

 

묵은 정이 좋더라고, 내 허물 개의치않고 함께 놀아줘서 고마워~

내가 죽으면 신불평원 위에 뼛가루를 뿌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

그대들이 있어 오늘 하루도 행복했다.

 

 

 

 

봄 같은 날씨, 어느 계곡엔가 복수초가 올라왔겠다.

어제는 억산, 오늘은 한실에서 연화산을 오르면서 마른 낙엽 사이로 올라온 춘란들을 많이 만났다.

 

 

  

 

한실마을 은행나무집 주인의 말이 명징하게 남았다.

"갱년기 장애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일생에 한번 뿐인 갱년긴데 특별하게 지내보는 것도 괜찮잖아요?"

 정신과 의사라 그런지 말 한 마디로 환자(?)를 감동시킨다.

써야할 원고를 포기할 정도로 무기력하고 부쩍 신경이 예민한 게 갱년기로 변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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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남벽 전경, 눈이 부셔 오래 바라볼 수가 없다. 가슴이 울렁거려 숨이 가쁘다.

이 한 장면을 눈에 담으려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다. 장장 11시간을!

 

 

 

 

밤배 위에서 바라보는 무인등대와 저 멀리 영도의 야경.

 

 

 

 

새벽달이 눈웃음치는 어리목의 여명, 이제부터 설국으로 들어선다.

 

 

 

 

새벽 빛이 남아있는 눈산호숲에서.

 

 

 

 

CPL 필터를 안 썼는데도 하늘이 저렇게 푸르다니!!!

 

 

 

 

흰 산호는 푸른 하늘에 머리를 담그고 바람에 일렁일렁~

 

 

 

 

어리목~윗새오름~ 돈내코까지 눈길 6시간은 환상 그 자체다.

 

 

 

 

배 고픈 고라니 한 마리는 저 눈길을  걸어 어디로 갔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원에 악센트처럼 구상나무가 박혀 있고...

 

  

 

  

눈으로 붕대를 감은 겨울나무.

 

 

 

 

목재 난간이 눈에 뒤덮여 형체만 보인다. 만세동산 전망대 가는 길.

 

 

 

 

백설 캬라반. 생계를 위해서라면 저렇듯 신나게 걷진 않겠지.

 

 

 

 

백록담 서북벽의 아찔한 위용. 신비롭고 아름다워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구름 위로 서서히 솟아오르는 저 산봉우리들은 한라산의 또 다른 선물.

 

 

 

 

모노레일이 설원에 제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이 이채롭다.

 

 

 

 

눈이 깊어서 길 아닌 길로 들어서면 허벅지까지 푹 빠진다.

 

 

 

 

윗새오름 대피소도 눈 속에 파묻혔다. 대피소 근처에 있던 사진기자가 말했다.

"오늘같은 날은 1년에 며칠 안 됩니다. 정말 일정을 잘 잡아 오셨네요!"

 

 

 

 

고사목이 눈을 맞고 회춘하는 모양이다. 저토록 눈부신 정염이라니!

 

 

 

 

눈 터널을 빠져나오면 또 다른 눈 언덕이 기다리고...

 

 

 

 

염려했던 악천후는 간밤에 다 물러가고 심설등반으로는 최적의 조건!

 

 

 

 

백록담 서북벽이 바로 눈 앞에!

폭설이 쏟아져도 쌓이지 않는 험준한 직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댄다.

 

 

 

 

거기서는 천천히, 좀 더 천천히  걸으세요.

눈꽃 터널 속에 머무는 그 순간은 천국의 시간이니까요.

 

 

 

 

방아오름샘 앞에서 남벽을 향해 샷~

남벽 분기점부터 돈내코까지는 설화가 전부 땅에 떨어졌다.

서귀포의 따뜻한 바람이 구름을 밀어올리더니 삽시간에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제주의 돌담은 엉성한 것 같아도 세찬 바닷바람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얼기설기 쌓은 돌담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빈틈없는 완벽주의자나 대쪽같은 성품보다 좀 느슨한 사람이 인간적이지 않을까.

 

 

 

 

돈내코로 하산해 뒤돌아보니 정상부만 하얗게 솟은 한라산이 먼 이국의 풍경같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저 산이 그렇게 멀었더란 말인가!

 

 

 

 

무박3일째 돌아온 부산연안여객 터미날.

덥고 시끄럽고 지저분한 객실에 특유의 기름냄새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한라산의 환상적인 설화가 그 모두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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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감(반시)으로 유명한 청도 매전마을에서 육화산을 올랐다.

낮게 깔린 연무 때문에 가까운 곳은 안 보이고 저 멀리 높은 봉우리만 보이는 기이한 날씨다.

온 산이 푸를 때는 저 소나무가 그리 잘나 보이지 않았다. 모두 잘났다고 뽐낼 때 소나무는 고요히 침묵하고 있었다. 

자, 이제 때가 왔다. 독야청청, 네 존재를 마음껏 드러내렴!

   

 

 

 

어이, 친구! 멋지구만~

느닷없이 불러냈는데 득달같이 달려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서방마마 용안도 편안해 보이시고, 자네 신수도 훤하더구만.

이제 한 세상 멋지게 놀다 갈 일만 남았네. 자네, 그동안 마음 고생 많이 했네.

 

 

 

 

 연무 속에 솟아오른 청도 화악산(왼쪽 상단)만 겨우 가늠될 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매전마을회관-감 농장-전망대-암릉-육화산 정상-흰덤봉-매전마을 (5시간30분 소요.)

매전마을은 가을날 마을 전체에 주렁주렁 달린 감들로 장관을 이룬다. 

 

 

 

 

1대간9정맥을 완주한 성냥팔이 아줌마와 '소문은 안 났지만 프로' 산친구 ㅎ

그들 사이에 끼어 나도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얼치기 산꾼이 프로 산꾼으로.

 

 

 

 

때로 삶은 아주 구태의연해 보인다. 더 이상 가슴이 뛰는 일도 없고,

삶에서 맛볼 것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사는 게 참 재미없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모든 것이 낡았으며 모든 것이 지나간다.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열정이 사라졌을 때, 그것은 새롭게 다가올 열정까지 미리 빛바래게 만든다.(중략)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들여 나조차 내 안의 뜨거움을 믿지 못하게 될 때, 그때부터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

<한명석 '늦지 않았다' 중에서>

 

 

 

 

매전마을 입구 감나무밭 속에 들어앉은 장연사지삼층석탑.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이 석탑은 도괴(倒壞)되어 하천에 있던 것을 복원했다고.

냇가의 낮은 구릉에 오두마니 앉아있는 석탑이 어쩐지 처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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