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녹음이다. 저수지에 비친 신록이 실물보다 더 아름답다.

사람도 때로는 남의 눈에 비친 모습이 실제보다 더 멋진 경우가 많지 않은가.

 

 

 

 

산악마라톤(?) 선수들의 종군기자로 차출된 하루.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지만, 롱다리 선수들 속에 숏다리 홍일점으로 따라가느라 쎄가 빠졌다.

 

 

 

영남알프스 주능선엔 진달래가 한창이다. 5월은 초록색 융단을 산 아래서부터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저 멀리 대비지가 사파이어처럼 박혀있고...

 

 

 

 

얼마나 아름답기에 가인계곡이라는 이름까지 얻었겠나. 인곡저수지를 끼고 시오리 가량 이어지는 길고 긴 계곡.

억산 정상까지는 왕복 13키로, 마지막 급피치만 빼면 소풍 삼아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선수들은 이 폭포 앞에서 중참을 먹었는데, 10명이 순식간에 소주 10병을 비웠다. 술 먹은 힘으로 더 잘 걸었다. 졌다!

 

 

 

 

덩치만큼 목소리도 큰 사람들이 개성마저 뚜렷해 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고 가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답을 알았다.

리더는 무조건 '나를 따르라'도 아니었고 '튀는 놈 왕따 시키기'는 더더욱 아니었고 화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쪽이었다.

산행중에 처진 사람을 끌고 오고, 무거운 짐은 자신이 지고, 술 취한 사람들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리더의 아름다운 덕목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느꼈다고나 할까.

 

 

 

 

요녀석, 매화말발도리.

바위 틈에 핀 저 녀석 찍느라 꺼꾸로 처박힐 뻔... ㅠ.ㅠ

 

 

 

 

언제까지 걸을 수 있으려나. 요즘은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몸도 저 진달래처럼 한풀 꺾였다.

아무리 우겨봐도 생물학적 나이를 파괴할 순 없지 않겠나.

어찌보면 이만큼 걸어온 것도 다행이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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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 매무새가 망가지듯이

썩 가볍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선 길이라 하루종일 심기가 편치 않았다.

청룡암 산신각 앞에 허드러지게 핀 복사꽃도 마음의 위안이 되지 못했다.

 

 

 

 

 

나는 시간 개념이 없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약속 시간 넘기는 걸 예사롭게 생각하는 사람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이 늦도록 주저앉아 뭉개는 사람들.

한 두번이면 이해하지만 번번이는 용서 못한다.

 

 

 

 

 인생사가 모두 그렇지만 여행도 등산도 발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혼자인 게 낫다.

<함께 걸을만한 길벗 없거든, 차라리 혼자 걸어 외롭기를 다하여라.>

 

 

 

 

산벚꽃 그늘 아래   /권경업 
       

저건 소리없는 아우성 같지만 / 실은, 너에게 보이려는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 저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 저렇게 환희 웃기까지의 /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 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낭히 시라도 몇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봐 / 글쎄,금방 글썽글썽해져 /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문예강좌 교재를 만들 요량으로 두어달 전부터 손광성의 수필쓰기를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장애인 대상의 강좌라 나름대로 이런 저런 선입견이랄까 예습을 많이 했다.

시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지적 장애인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결론은,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내가 읽은 5권의 책이 아무 소용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놀아줄 국어선생이 필요했다. 문장도 문법도 관심 밖이었다.

세상 일이 대개는 그렇다. 미리 염려하고 준비하고 지나치게 완벽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절벽에 매달려 손을 놓아버릴 수 있는 자유가 그립다.

  

 

                                                                                                                                                                                       <관룡산 암릉, 2010/ 5/2 >

 

마음 둘 곳 없어라. 저 산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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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초행길에 홀딱 반해 '차마고도 루트'로 이름 붙인 곳.

봄물 오르면 다시 가야지 하고 벼르고 별렀다. 숲이 무성해져 저 길이 덮이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해발 1천미터는 아직 겨울이었다.

들머리에서 연두와 초록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 봄물은 5부 능선을 채 밟지 못 했다.

 

 

 

 

올해는 3,4월 내내 쾌청한 날이 별로 없어 기분마저 우중충했는데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이 그동안의 우울을 상쇄해주고도 남았다. 좋은 벗들과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함께 누리다니!

 

 

 

 

표충사 왼쪽 내원암 옆길로 들어서 가파른 오르막을 두어시간 치고 올라 진불암을 만났다.

지난 겨울 비어있던 암자에 오늘은 지장전 문도 활짝 열려있고 노스님도 계신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을 꼽으라면 아마 이런 날들 중에 꼽지 않을까.

청량한 공기 속에서 좋은 벗들과 산 위에 함께 머무는 순간들. 세속의 어떤 것들도 저 순간보다 멋질 수 없다.

 

 

 

 

표충사에서 사자평고원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임도. 봄물이 파르라니 능선을 타고 오른다.

요즘 비가 잦아서인지 겨울에 보지 못했던 폭포도 두어 줄기 생겼다.

 

 

문수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저 멀리 재약5봉의 하나로 꼽히는 향로봉이 보이고...

 

 

 

 

아침 신문에서 홍신자(전위무용가. 70세) 씨가 독일 출신의 한국학자와 결혼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A 왈 "남자는 그렇다 치고, 여자가 그 나이에 왜 결혼을 해? 귀찮게스리!" 

B왈 "아마 해프닝일 거야."

70대에 연애할 수 있는 열정이 어디냐.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로 70대 연애는 신의 은총이라는데.

나이 들수록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짜 '내 편'이 필요하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단 한 사람.

홍신자 씨는 아마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게 70이라고 해서 타인의 지탄을 받을 필요는 없다.

 

 

 

 

신의 은총같은 햇살 아래 마음에 점을 찍는다. 은혜로운 點心이다.

 

 

 

 

진불암 아래 수직 절벽. 아찔한 단애가 오금이 저린다.

 

 

"이만하면 됐지 뭐. 이만큼 살면 잘 사는 거지 뭐." 산 위에서 친구는 자주 그런 말을 한다.

그녀의 남편은 최근에 수억원대의 연쇄부도를 맞았다.

설 추석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않는 그 성실한 남자, 그러나 한번도 쨍하고 해뜰날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울지 않는다. 아직 굶지 않으니 다행이고, 아직 산에 다닐 수 있으니 다행이란다.

 

 

 

 

간장 종지만한 내 그릇보다 그 친구 그릇이 훨씬 크다.

그런데 왜 운명은 종종 그런 사람들에게 후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집 김기사, 오늘 가문의 영광을 맞았다. 불세출의 미인들과 한 자리에 서다니.

허물 많은 나를 데리고 살면서 그동안 참 많이도 삭았는데...

 

 

 

 

복사꽃이 역광에 너무 아름다워 수십번 날린 샷.

 

 

 

 

하산해서 올려다 본 풍경.

왼쪽 절벽지대 안쪽에 진불암이 있고, 단애를 마주보면서 산을 올라 재약산 마루금에 이른다.

 

 

 

 

표충사 인근 숲 속은 온통 연두빛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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