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고로면 석산리, 미인의 눈썹을 닮았다는 아미산(737m)을 찾았다.

들머리에서 수직으로 올라붙는 암릉이 압권이었다. 바위 틈새 푸른 소나무를 키우는 산의 너그러움도 멋지고.

 

 

 

 

육산(肉山)은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때로 지루하고, 악산(嶽山)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때로 불안정하다.

아미산은 들머리의 암봉군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육산이다.

 

 

 

 

50여년 만에 처음 만난 두 분, 오늘 친구가 되다.

경상일보에 '고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수필가 조관형 님과 연하고질 흑기사 선바위 님.

나이도 동갑, 20대부터 산에 다닌 경력이나 울산에 정착한 시기 등 두 분이 통하는 게 많았다.

조대장 님은 최근 '백두대간, 그 길에서 묻다'라는 책을 냈다.

동해펄프 재직시 동료 10여 명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기록인데 산행기라기보다 명상록에 가깝다.

아미산에 함께 간 회원들은 조대장 친필 사인이 든 책을 선물로 받았다.

 

 

 

 

예전같으면 로프를 타고 암릉에 도전했겠지만 지금은 우회로로 돌아간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복잡한 일은 피하고 싶고, 까다로운 사람도 멀리 하고 싶다.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 능선으로만 이어진 코스. 아미산을 그렇게 탔다.

중국의 유명한 불교성지 아미산을 닮았다는데 그건 중국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지어낸 말 같다.

 

 

 

 

 

칼칼한 공기에 전형적인 초겨울 날씨. 소나무는 추울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설악산 용아장성의 일부분을 떼어다놓은 것같은 바위군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양지바른 무덤가를 지나다 도시락을 펼쳐놓은 중년의 등산객들을 만났다. 

서쪽으로 기운 햇살처럼 조금은 애잔한 그들의 얼굴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신랑 가슴 사이즈랑 비슷하다고 소나무를 껴안고 좋아하는 저 여인,

짝지교 신자라지 아마!

 

 

 

 

 함께 걸을만한 길벗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한가.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넘치면 넘치는대로 너그럽게 봐줄수 있는 산친구들이 있어 즐거웠던 하루.  

 

 

 

 

 

산지점 대곡지도 가뭄에 목이 탄다. 목 마르긴 나도 마찬가진데...

목마른 시늉을 하면 번번이 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어서 탈이지만.

 

 

 

 

                  찰랑이는 햇살처럼 /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문정희 '순간'>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이 개울 바닥에 눈부신 윤슬을 드리웠다.

일몰을 뒤에 두고 돌아오는 길, 수수밭도 지나고 목화밭도 지나고...

생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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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바위라는 이름은 팔공산에만 있는 게 아니더라.

 

 

 

 

 오락가락하는 일기예보를 믿은 건 아니었지만

우의를 입으면 비가 그치고, 우의를 벗으면 비가 오는 참 얄궂은 날씨였다.

 

 

 

 

 저 능선을 타고 갓바위로 올랐는데, 걸을 때는 몰랐다. 그 길이 저렇게 아름다운줄.

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일이다. 사람도, 사물도.

 

 

 

 

 아무도 밟지 않은 생낙엽을 질리도록 밟았다.

비에 살짝 젖은 낙엽, 산의 알몸 냄새.

 

 

  

 

 왼쪽 멀리 팔각산이 보인다.

그 옆으로 동대산과 바데산도 낯익고...

 

 

 

  

 조망 하이라이트.

저 기암도 단풍으로 인해 멋드러지고, 단풍 또한 기암과 함께 더욱 아름다우니

너는 나를 빛내고, 나는 너를 빛내고, 그런 인연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근육질의 사나이같은...

 

 

 

 

 가을 물이 가장 맑다고, 누군가 그랬지.

저수지 반영이 실물보다 화려하다.

 

 

 

 

 용암사 가는 길, 저 풍경에서 오늘 산에 온 보람을 느낀다.

 

 

 

 

비교적 덜 알려진 산이라 조용하고 깨끗하다.

마른 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솨아아~~~ 송뢰같다.

 

 

 

 

한 달만에 집에 온 아들을 두고 산으로 내뺀 엄마, 빵점!

모범적인 인생들에게 왠지 딴지를 걸고 싶은 인간, 빵점!

다음 생에도 더 많은 산들을 오르내리고, 더 기우뚱하게 살듯한 내 인생... 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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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바람, 돌풍 속을 걸었던 하루.

백두대간 댓재를 넘자마자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리기 시작해 산행이 만만치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어프로치가 길어서 좀 지루했지만 산행 들머리(삼척 번철리)에 들어서자마자 보답을 받았다.

황홀하게 타오르는 단풍나무에 너도 나도 넋을 잃었다.

 

 

 

 

 수십년 오지를 누비고 다닌 노하우, 그 중에서도 엑기스만을 골라 보여주시는 한돌님.

조릿대 숲을 헤치고 오는 그의 모습에 단풍이 후광처럼 아름답다.

 

 

 

 

불 좀 꺼주세요! 불 좀 꺼주세요!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다구요. 제발 불 좀 꺼주세요!

 

 

 

 

6건의 약속을 파기하고 산행에 기꺼이 합류해준 선바위 님, 감사합니다.

님의 배려와 희생으로 1박2일 강원도행이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참 믿음직한 산꾼으로 님을 기억합니다.

 

 

 

 

 두타산(1,353m) 정상 직전 조망. 단풍은 7부 능선정도 내려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너도 혼자구나... 언젠가는 바람 한 줄기에 무릎을 꺾고 말겠지?

 

 

 

 

두타산 정상의 장엄한 빛내림.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복될 수 없다. 감사, 감사, 또 감사.

 

 

 

 

박달령 지나 문바위에서 번철리로 하산하는 길.

하늘을 담고 있는 계곡의 물빛이 신비롭다.

 

  

 

 

시월들어 연속 3주 무리한 산행을 하고 있으니 무릎이 앙탈을 부린다. 한번만 봐주라. 제발 한번만...

번철리계곡-두타산 정상-박달령-문바위-원점회귀하는데 5시간30분.

캄캄한 밤에 가리왕산 야영장에 도착해 집 두채 짓는데 한 시간도 더 걸렸다.

 

 

 

 

뒷날 아침 조양강 물길을 따라 동강 연포마을을 찾아간다.

굽이치는 강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이 자꾸만 차를 세우게 한다. 지난 여름과는 또 다른 눈맛이다.

 

 

 

 

 아슬아슬한 바위 절벽도 지나고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밑을 지나

 

 

 

 

차승원이 출연했던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 연포분교에 차를 세웠다.

구비구비 고개를 넘어오는 동안 SM7은 기름통이 비어서 거의 아사 직전이었다.

 

 

 

 

버릴 거라곤 하나도 없는 내 친구 수나. 내가 복 받았지 복 받았어, 너같은 친구를 만났으니!

분교에서 장난스레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이 소녀같다.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사람들이 떠난 집에 나팔꽃 저 혼자 사다리를 타고 있다.

동강 마을에도 빈집들이 많다. 아무도 몰래 연인과 숨어들고 싶은...

 

 

 

 

 칠족령 가는 길, 저 푸른 물굽이 아래 집을 지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한여름 레프팅 보트가 점점이 떠갔을 동강은 언제 그랬냐는듯 천진한 낯빛이다.

 

 

 

 

강 안쪽 절벽을 타고 우리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인다.

강원도 사람들은 저런 절벽을 뼝대라고 부르던데...뼝대 위를 걸어왔는지 날아왔는지 모르겠다.

 

 

 

 

최고의 명당은 남이 나를 볼 수 없는 곳이라지 아마. 나는 적을 볼수 있어도 적은 나를 못 보는 곳.

동강의 뼝대가 아마 그런 명당이 아닐까.

 

 

 

 

깎아지른 뼝대를 타고 가는 동안 저 아래 강가를 걷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띈다.

아스라한 그림자 둘이 마주 보다가 손잡고 걷다가...

 

 

                                                                                                                                                             

 

가을 한가운데 동강 트레킹을 나선 그들이 참 신선하고 멋져 보였다.

 

 

 

 

칠족령(529m) 조망대에서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물굽이가 휘돌아가는 모습이며, 강가에 자리잡은 마을의 고즈녁한 모습이라니!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거스르지 않는다.

 

 

 

 

 칠족령에서 거북이마을로 하산하는 길.

마을 텃밭도 지나고 농막도 지나고, 키보다 높은 억새숲도 지난다.

 

 

 

 

 저 태양초는 도시에 사는 아들 딸에게 주려고 말리는 것일 게다.

늙은 부모들은 당신 입에 넣기 전에 자식들을 먼저 생각할테니까.

 

 

 

 

뼝대 위에서 보았던 동강의 트레커 둘이 나무 밑에서 쉬고 있다.

사십대 중반쯤일까? 어글어글한 눈매의 여인과 인상 좋은 남자, 참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문희마을에서 백운산 찍고 동강 트레킹을 하고 있다고, 땀이 번질거리는 얼굴이었지만 참으로 밝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친구이건 연인이건, 감성이 맞는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어 순간순간 행복할 것이다. 여자의 눈빛에서 그걸 느꼈다.

 

 

 

 

동강을 즐기는 방법에는 이런 수단도 있었구나.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나타난 전차군단에 동강이 살짝 눈을 찌푸린다.

 

 

 

 

산색이 좋아서 담아본...

 

 

 

 

옥수수 수확이 끝난 강원도의 빈 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나를 통과하고 있다.

 

 

 

 

 위: 두타산 / 아래: 칠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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