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도로를 사정없이 달려온 이유가 뭐꼬? 뭐가 그리 답답하고 뭐가 그리 울적하더노?

니보다 외로운 사람 많데이. 니보다 안 풀리는 사람 많데이.

죽림굴에 올라가던 수녀님 일행이 안 그라더나? 니가 부럽다꼬... 

사람 사는 기 다 그런갑더라. 남의 꽃밭은 다 좋아 보이는기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요 /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죠 / 그래서 나처럼 살지도 못하고 / 당신처럼 살지도 못하죠

나처럼도 아니고 당신처럼도 아닌 / 그토록 아무 것도 아니게 그토록 어정쩡하게/ 그렇게 나는 살고 있어요

                                                                            <김언수 소설 '캐비넷'중에서>

 

 

 

 

 

돌아서기엔 너무 멀리 왔재? 너무 늦었재? 발 밑이 저리 아득한데 우짜겠노?

누구 탓할 거 없는기라. 다 니 탓인기라. 니가 니 몸 잘 간수하고 니가 니 맘 잘 간수해야 되는기라.

삐걱거리는 몸뚱이로 오데 가겠노? 이제 포기해라 마!

 

  

 

 

 

돌틈 사이로 뿌리 내린 내 신세 좀 보거래이.

저기 흙 한 줌이 있겠나, 살가운 그늘이 있겠나, 맨날 목마르고 쓸쓸한기라.

때로는 누가 꽃 모가지만 달랑 꺾어 가고, 어떤 넘은 뿌리까지 캐다가 시들시들 말려죽이기도 한데이.

 

 

  

 

 

연암 선생이 '好哭場 可以哭侯' 했다는 참 좋은 울음터는 아니지만, 니 여기서 실컷 함 울어봐라.

가슴에 담아놓지 말고 이 너른 터에 와서 실컷 울고 가면 응어리가 풀릴끼다.

박종석 선생이 안 그라더나? 사주쟁이가 딱 보고 하는 말이 "허어~ 망망대해에 돛단배 신세로구나!"

그 말 한 마디에 박샘이 엎어져 울었다 안카더나?

다리 밑의 사주쟁이한테 지 마음 다 쏟아놓고 실컷 울 때가 있는기라. 그 똑똑한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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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핀 꽃을 보면 나도 몰래 가슴이 저리곤 한다.

바람을, 벌레를, 캄캄한 밤을 저 혼자 견뎌왔을 꽃 한 송이.

사는 건 견디는 일이다. 묵묵히 견디고 버텨내는 일이다. 저 혼자 고요히 피고 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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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 안개, 이슬비, 운무... 하루종일 눈 앞을 가리던 그 베일들이 고마웠다.

촉촉한 내 마음 함께 젖어서 조릿대 위에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숲 속으로 잦아들고 싶었다.

 가천 불승사-삼봉 능선-신불평원-신불재-불승사,  운무 속을 유영했던 아름다운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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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하나에 꽃 한 송이, 마술에 걸린 거미줄 좀 보라지.

나도 누구에겐가 저렇게 빛나는 존재가 된 적이 있었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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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하나에 목숨을 건 거미처럼 부질없는 것에 많은 것을 걸어왔던 인생.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됐다. 버릴 때가 됐다. 이루지 못할 것들에 연연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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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 사랑하는 사람을 /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 떠나보내고 / 어둠 속에 갇혀 / 짐승스런 시간을 / 살 때가 있다 / 살다가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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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 속의 신불산대피소는 궁궁이가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막 피어난 억새꽃들이 빗속에 함초롬히 젖어있던 신불평원, 별처럼 피기 시작한 구절초 쑥부쟁이들도

그날은 저 꽃들만큼 환호를 받지 못했으리. 아름다워라, 신비로워라!

늘 그 자리에 군락을 이루고 피어있었을 그 꽃들을 제철에 만난 게 처음이라니. 십수 년 저 곳을 스쳤으면서!

시절인연이란 그런 게 아니더냐. 너와 나의 인연이 그런 게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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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그대 몫은 행복, 내일 그대 몫은 기쁨!

남은 날들을 이렇게 웃으며 보내고 싶다. 운무 깔린 인생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맑고 밝고 명랑하게!

 

 

<photo by : 마당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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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일대에서 내 발길이 가장 자주 닿는 곳이 학심이골이었다.

이었다, 라고 굳이 과거형을 쓰는 까닭은 예전만큼 자주 못가보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 인적이 드물 때의 학심이골을 생각하면 등산로가 반질반질한 요즘이 영 마땅찮기도 하려니와

 가파르고 거친 너덜과 위험한 계곡을 트레킹할만큼 내 무릎이 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지산 북쪽 깊숙한 계곡에 숨은 듯 자리잡은 학소대폭포.

학이 깃들었다는 그럴싸한 이름에 손색이 없을만큼 높고 힘차고 멋드러진 폭포다.

다소 위험을 무릅쓴다면 폭포 왼쪽 절벽을 올라 상폭을 보고 오련만... 그 은밀한 선녀탕은 이제 두번 다시 못 가보겠지.

 

 

 

 

  운문령에서 귀바위로 올라오다가 7순의 노부부를 만났다.

주름진 얼굴, 눈부시게 흰 머리카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리터 배낭을 지고 가볍게 걷는게 어찌나 신선한지.

"어르신들은 제 모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몸 관리를 잘 하셨어요?"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 겨. 부지런히 움직여야재. 우리는 죽기 전까지 걸을 거여!"

 

 

 

   

막바지 피서 기간이라 그런가, 광복절 휴일이라 그런가, 산에는 사람이 제법 많다.

조용하면 학소대 아래 에메랄드빛 물로 뛰어들까 했더니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참았다.

 

 

 

 

 이 무슨 요염?

사진이 너무 밋밋해서 엑센트를 넣어볼까 했더니 모델을 중앙에 놔서 구도가 틀렸다.

이봐! 오른쪽으로 좀 내려오지? 뭐? 조금만 더 내려오면 미끄러져 황천간다고?

 

 

 

 

학소대폭포 아래 3단폭포에도 물이 풍성하다.

물줄기를 살려 찍자니 계곡이 어둡고, 계곡을 살려 찍자니 물줄기에 하이라이트 경고등이 들어온다. 어렵다 어려워.

명암, 질감, 색감 3마리 토끼를 잡아보려고 카메라 노출을 8부터 22까지 조여본다.

삼각대도 없이 스피트는 1/30초. 찍을 때 흔들릴까봐 자동셔터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

 

 

 

 

대구에서 온 등산객 한 분이 자청해서 모델이 되었다.

폭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물로 뛰어들었는데, 장대한 기골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미남보다는 호남, 호남보다는 쾌남이 좋으리. 저 폭포처럼 화통하고 시원한!

 

 

 

 

사진을 목적으로 폭포산행을 하는 건 처음이다.

여름 다 가기 전에 근사한 폭포 사진을 찍고 싶었고, 그 모델로는 학심이골이 제 격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곳,  장마철엔 계곡 전체가 폭포로 변하는 아름다운 곳!

 

 

 

 

무거운 카메라 둘러메고 왕복 6시간 산길을 걷는 게 만만찮았지만,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내 몸은 낡아갈텐데.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 한다. 볼 수 있을 때 봐야 한다. 다음을 생각하는 공리(理)는 버리고 싶다.

지금, 현재, 여기가 최선이고 최고다.  이승에서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내세에도 천국은 없다.

 

 

 

 

저 거침없는 폭포처럼 그대에게 가고 싶다.

시퍼런 심장에 수직으로 가 꽂히고 싶다.

 

 

 

 

그러나 사랑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운 것이더냐.

천년을 흘러도 아파하지 않는 바위처럼 우리들 가슴도 저렇게 무디어졌을 뿐이고...

 

 

 

 

 사진 찍는 내내 기다려주고, 혼자 잘 놀고... 이쁘다 친구야!

늙어서 나 못 걸어다니면 니가 리어카에 싣고 다녀야 해, 알았지?

 

 

 

 

학심이골의 잔다르크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때 저런 날도 있었다. 학소대 푸른 물에서 헤엄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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