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이 아롱거려 글도 못 쓰겠다.

하루종일 모니터만 보고 있었더니 눈이 실실 감긴다.

 

 

 

 

 지난 겨울 한밤의 불꽃놀이가 벌어졌던 화왕산.

불 지난 흔적도 없이 억새는 울창하게도 올라왔다.

 

 

 

 

나도 알지. 저 산정의 불꽃놀이를.

바싹 바른 억새에 불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타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이 불과 5분.

그 짧은 순간의 황홀한 충격과 아찔한 전률이라니!

 

  

 

 

언제까지 이렇게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설레일 수 있을까.

 

 

 

 

카메라를 프로그램 모드로 놓고 1/3 정도 마이너스 노출로 찍었다.

등산하면서 노출과 스피드를 제대로 맞추기 힘들다.

 

 

 

 

오른쪽이 화왕산 정상. 저기서 한밤의 불놀이를 봤었는데...

 

 

 

 

 오름길에 본 창녕읍내. 네비 덕분에 창녕군청에 가서 인사하고 왔다.

 

 

 

 

참 유쾌한 사람. 밝고 투명한 사람. 재치있는 유머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

 

 

 

 

불 지나간 뒤 화왕산 억새는 전염병처럼 창궐했나봐. 이렇게 방만한 자태는 처음이야.

 

 

 

 

 촌철살인의 귀재. 보이쉬한 매력을 지닌 독특한 여인.

 

 

 

 

역광에 부서지는 억새 억새 억새들...

 

 

 

 

저런 그림을 볼 때마다 영화 '가시나무새'의 엔딩이 생각난다는...

 

 

 

 

렌즈에 뭐가 묻었던가 보다. 이후 사진이 모두 이렇게 생겼네 ㅠ.ㅠ

 

 

 

 

막걸리 한잔에 눈이 슬슬 감긴다. 일찍 자야겠다.

어제 쓰다만 원고를 하루종일 붙들고 있다가 저물녘에 겨우 끝냈다.

다시는 신문사 원고, 쓰지 않으리! 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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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계절이 나를 통과하고 있구나.

숲 속으로 들어서자 왈칵 스며드는 젖은 낙엽 냄새.

 

 

 

 

저녁 약속도 있고 하니 백운산이나 가볍게 한바리하고 오자고 나선 걸음이었다.

지금쯤 다래가 한창이겠거니 하고 내심 점찍어둔 곳을 찾아나섰는데 아뿔싸, 다래넝쿨은 모조리 잘려나가고 없다.

발 밑에는 도토리가 쏟아부은 것처럼 널려있는데 그냥 두고 발걸음이 떨어져야 말이지.

이제 그만, 이제 그만, 하면서도 배낭에 가득 차도록 도토리를 주웠다.

 

 

 

 

애초 등산로를 벗어나 들머리를 잡은 것이

내친 걸음인지라 그 길로 계속 방향만 잡고 올랐는데 길 없는 길에 그야말로 빨치산루트를 타고 말았다.

끝없는 잡목 숲에 간벌로 쓰러진 나무들, 울울창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더니 비까지 후두둑 떨어진다.

운무가 산을 내려오며 시야를 가리는데도 우리는 눈 앞의 더덕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비와 땀에 흠뻑 젖어 주능선을 찾았을 때는 출발 시간에서 거의 4시간이 흘러 있었다.

가지-운문 주능선 우뚝한 조망바위에서 한숨을 돌린다.

일행들이 믿음직했기 망정이지, 초보들 데리고 왔으면 어쩔 뻔했나. 조금은 긴장되고 불안한 산행이었다.

 

 

 

 

백운산 정상 부근은 제법 단풍이 곱다.

높다고 단풍이 먼저 드는 것도 아니고, 낮다고 반드시 단풍이 늦게 드는 것도 아닌가보다.

나이 먹으면 다 철드는 것 같아도, 천만에! 평생 철 안드는 나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玉을 주고 돌을 돌려받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네.

내 눈에 눈물 흐르게 하는 사람 더 이상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 말을 의심없이 믿어주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내 입가에 웃음을 선사하는 친구들이여.

언제나 내편이라 고맙다. 고맙다.

 

 

 

 

베틀바위 근처에도 단풍이 울긋, 저 멀리 가지산 주능선에도 단풍이 불긋.

가을아, 어디쯤 왔니. 물을 새도 없이 성큼 다가온 계절을 실감한다.

 

 

 

 

구룡폭포에 살던 용이 승천을 해버렸는지 폭포에는 물이 바싹 말랐다.

 

 

 

 

길눈 어둡기로는 나하고 비슷한줄 알았는데 그래도 당신이 나보다 훨 낫네.

영악한 남자도 못되고, 용의주도한 남자도 못되는 참 바보같은 당신. 그러니 나를 만나 살지.

 

 

 

 

영하 십몇도의 겨울산에서 내 발에 아이젠을 채워주었던 친구, 그때 네 손은 얼마나 시려웠니?

언제라도 부르면 함께 산에 갈수 있는 친구, 너도 고맙다.

 

 

 

 

탁족하는 시간만큼 상쾌한 순간이 또 있을까.

내 다리에 알통이 굵거나 말거나, 내 발이 못생기거나 말거나 아무 거리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 고맙다.

 

 

 

 

한실마을 느티나무집. 토요일 저녁 하룻밤을 지새운...

 

 

 

 

핼쓲한 메밀꽃, 너도 나처럼 철 없이 피었구나.

 

 

 

 

저 한 송이 꽃을 담기 위해 젖은 땅에 털썩 주저앉길 몇 번.

차나무 꽃이 가을에 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늘 보면서도 잊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피고 지는 꽃이 어디 저 꽃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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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가 폈나 안 폈나 정찰하러 나선 길.

주암계곡 심종태바위 능선을 따라 사자평까지 한달음에 걸었다.

 

 

 

 

숲은 꼭 내 나이만큼 가을로 가고 있다.

미당의 노래처럼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가.

 

 

 

 

저 노란 꽃을 제대로 담아보려고 한 30분은 정성을 들였을 게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역광의 잎맥을 살리려고 쭈그려 쏴, 엎드려 쏴, 우러러 쏴 등등.

그러나 야속하게도 만족스러운 사진은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고 날린 샷의 결과물이 이외로 나를 기쁘게 할 때도 있다.  

산다는 것도 그런 거 아닌가 몰라. 인간관계도 그런 거 아닌가 몰라.

기울인 정성만큼 되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는 보답을 받기도 한다.

나도 너에게, 너도 나에게 우리 서로 기대 밖의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푸른 하늘에 머리 감는 억새, 억새, 억새들.

사자평은 바람과 구름과 억새들의 영역이다.

  

 

 

 

여름 내내 피고 지던 저 조그만 꽃들도 이제 씨앗을 품으려 한다.

산삼골 욕쟁이 할매도, 홀로 남은 할배도 이태 전에 하늘로 가셨다는데 꽃은 저 혼자 남아 독가촌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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