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 시저는 달력을 바꾼 남자. 로마 사람들이 시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7월을 July로 개명하게 만들었다. 시저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아버지보다 한술 더 뜬 남자. 자신이 태어난 8월을 제 이름을 따 August로 정하고 2월에서 이틀을 떼어내 날짜까지 31일로 고쳐버렸다.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들이 갖고 있던 태양력을 뜯어고친 로마의 황제처럼7,8월은 정말 용맹한 달이다. 뜨거운 태양 아니면 집중호우, 미지근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우유부단(優柔不斷)을 용서하지 않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계절.
7월말에서 8월초로 이어지는 시기는 이 계절의 정점이다. 모든 것을 태울 듯한 땡볕 아니면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폭우. 회사마다 이 시기에 집단휴가를 주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해마다 땡볕 아래 걷거나 폭우 속을 달리게 된다. 올 여름도 천둥 번개와 큰 비를 동반하고 다녔다.
전라남도 담양 일대를 올 여름 여행지로 정하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 건 출발 사흘 전. 작년 여름 남도 여행에서 빠진 곳이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아직은 때가 덜 묻고, 인정이 남아있고,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에.
소쇄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계산하는데 표 끊는 아주머니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쬐깐한 건 돈 안내도 돼야~” 해서 웃었다. 초등학교 4학년 조카가 몸집이 왜소해 어려 보였던 모양이다. 가끔 입장료 때문에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여기선 오히려 입장료 면제. 역시 전라도 인심이 후하다.
소쇄원에 오면 건축가는 건축을, 미술가는 그림을, 문학가는 가사문학을 공부하게 된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정원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 암반을 흘러내린 물이 폭포를 이루어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자연을 최대한 살려 정자를 지었는데 건물 배치나 구조가 퍽 안정적이고 멋스럽다.
스승이었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인해 능주로 유배당해 죽자 그의 제자 양산보는 출세에 뜻을 버리고 초야에 묻히게 된다.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긴 ‘소쇄’처럼 양산보의 성품이 고고하고 절의가 곧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 묻히게 되었을까?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계보 따라 명멸하는 것. 스승이 유배당해 죽는 판국에 제자가 아무리 똑똑한들 살아남아 출세를 꿈꿀 수 있겠는가. 조광조의 죽음은 양산보의 추락을 예고하는 것.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조광조와 양산보가 권력의 암투에 휘말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을 것이니, 슬프다. 권력무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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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안빈낙도(案貧樂道)의 삶을 노래한 ‘성산별곡’ 임금에 대한 충정을 남녀의 애정에 비유한 ‘사미인곡’ 등 가사문학의 정수를 보았다. 실세(實勢)에 밀려난 사림(士林)들이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함을 슬퍼하며 수많은 시를 남겼다. 겉으로는 안빈낙도요 사랑이었으나 속으로는 원한이며 한탄이었을 것이다.
내가 특히 눈여겨 본 것은 허난설헌의 친필로 남아있는 규원가(閨怨歌). 케케묵은 한지에 번진 얼룩이 그녀의 한과 눈물로 느껴졌다.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었던 그녀는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우한 천재였다. 이 넓은 세상에 하필이면 왜 조선에 태어났을까,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나 아이를 갖지 못한 설움을 겪을까, 수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그녀의 한은 작품 속에 서리서리 맺혀있다. 그 한이 그녀를 27살에 요절케 했는지도 모른다. 천재는 단명(短命)하다지만 살아있는 날들이라도 행복했으면 좋았을 걸.
오늘날에도 수많은 허난설헌이 살아있다. 남편의 외도를 견디며, 고부갈등을 참으며... 시대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여자는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한다. 아직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니까. 남자보다 가정을 더 사랑하니까.
나의 담양 답사의 맥을 짚자면 가사문학과 대나무, 추월산으로 대별된다. 일부러 담양 장날을 잡아 여행 일정을 잡았으나 실제로 죽제품을 사고파는 진풍경은 보지 못했다. 값싼 중국산의 공격에 경쟁력을 잃어버린 담양 죽제품은 특이한 장날 풍경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죽녹원 입구에서까지 중국산 대나무 제품을 팔고 있는 데는 아연실색했다.
대나무박물관에서 본 한국의 대나무들은 퍽 인상 깊었다. 한국에 자생하는 수십 가지 대나무 수종을 박물관 뜰에 심어놓았는데 세죽이나 산죽 오죽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큰 발견이었다. 아는 만큼 본다더니, 그동안 산에 다니면서 대체 무얼 보고 다닌 건지 부끄러웠다.
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내가 정하는 목표는 문화유적과 특산물, 그리고 산이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문화를 나눈다. 영산강 유역의 서해안 평야지대와 섬진강 유역의 동쪽 산간지대를 갈라놓은 호남정맥이 담양 추월산을 지나간다. 그 산에 올라보지 않을 수 없다.
물안개 걷힌 담양호를 따라 추월산 아래 국민관광단지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올랐다. 8부 능선에 있는 보리암을 거쳐 정상을 돌아오는 왕복 5.2Km 길.
4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그 길을 6시간이나 걸었다. 호남정맥 마루금에 매달아놓은 리본을 보고 하산길로 착각해 내처 걸었으니 까딱하면 내장산까지 갈 뻔했다.
천길 절벽 위에 올라앉은 보리암은 지리적 위치나 조망의 즐거움이 경이롭다. 발아래는 이산 저산 사이로 흘러온 물이 담양호로 조용히 모여든 모습. 암자 옆으로는 90도 직벽. 그 절벽 사이에 잊었던 기억처럼 노랗게 피어난 원추리. 고개 들면 건너편 산정을 따라 금성산성이 길게 이어진다.
호남 3대 산성이라는 금성산성과 추월산은 임진왜란과 동학란의 마지막 격전지였다고 한다. 등산로 초입에 세운 비석에 언양 사람 아무개가 여기서 전사했다는 글을 읽고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호남 5대 명산에 꼽힌다는 秋月山은 진귀한 추월난이 자생하는 곳. 가을 보름달이 산봉우리에 닿을 정도로 높다 해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추월난이 어떻게 생겼는지 숲속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안 보이고 흰 밥알을 입에 문 며느리밥풀꽃만 어색하게 웃고 있다.
비를 실은 구름이 잔뜩 몰려와서 추월산 정상에서는 기대했던 조망이 없었다. 뒷배경으로 내장산과 무등산을 넣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러나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산을 내려와야 했다. 짙은 운무가 시야를 가리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어서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를 2시간여. 아이들 앞에서 불안한 내색을 비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했다. 능선이 좀 길다 싶었지만 그렇게 멀리 잘못 간줄 몰랐다. 역시 나는 방향치(方向痴)야. 길치(痴) 혹은 길맹(盲)이거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하산하는 우리를 보고 가게 할머니는 “웜메~ 쬐깐한 애기까정 델고 가서 시방까지 있었소 잉?” 시계를 보니 3시20분. 아침 9시반에 떠나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비와 배고픔에 젖어 아이들은 입술이 새파랗다. 개구리라도 잡아먹을 듯 간절한 눈빛이다.
뜨거운 라면을 먹고 가게를 나서는데 할머니가 말하셨다.
“젊었을 때 많이 놀러 다니시오 잉. 우리 할배처럼 되면 못논당께.”
휠체어를 타고 망연히 밖을 내다보던 가게 할아버지. 그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채 한쪽 팔마저 떨고 있었다. 나는 문득 지미 카터가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을 떠올렸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약이나 치료에 매달리는 대신 다양한 오락 활동을 하라. 이 충고는 정신과 육체 건강 모두에 해당된다. 변화와 실험, 여러 가지 휴양과 혁신, 모험으로 꽉 찬 병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인생이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멋진 구도로 늘어선 길을 따라 순창으로 달리면서 생각했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200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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