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 시저는 달력을 바꾼 남자. 로마 사람들이 시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7월을 July로 개명하게 만들었다. 시저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아버지보다 한술 더 뜬 남자. 자신이 태어난 8월을 제 이름을 따 August로 정하고 2월에서 이틀을 떼어내 날짜까지 31일로 고쳐버렸다.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들이 갖고 있던 태양력을 뜯어고친 로마의 황제처럼7,8월은 정말 용맹한 달이다. 뜨거운 태양 아니면 집중호우, 미지근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우유부단(優柔不斷)을 용서하지 않는 일도양단(刀兩斷)의 계절.

7월말에서 8월초로 이어지는 시기는 이 계절의 정점이다. 모든 것을 태울 듯한 땡볕 아니면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폭우. 회사마다 이 시기에 집단휴가를 주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해마다 땡볕 아래 걷거나 폭우 속을 달리게 된다. 올 여름도 천둥 번개와 큰 비를 동반하고 다녔다.

전라남도 담양 일대를 올 여름 여행지로 정하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 건 출발 사흘 전. 작년 여름 남도 여행에서 빠진 곳이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아직은 때가 덜 묻고, 인정이 남아있고,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에.

소쇄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계산하는데 표 끊는 아주머니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쬐깐한 건 돈 안내도 돼야~” 해서 웃었다. 초등학교 4학년 조카가 몸집이 왜소해 어려 보였던 모양이다. 가끔 입장료 때문에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여기선 오히려 입장료 면제. 역시 전라도 인심이 후하다.

소쇄원에 오면 건축가는 건축을, 미술가는 그림을, 문학가는 가사문학을 공부하게 된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정원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 암반을 흘러내린 물이 폭포를 이루어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자연을 최대한 살려 정자를 지었는데 건물 배치나 구조가 퍽 안정적이고 멋스럽다.

스승이었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인해 능주로 유배당해 죽자 그의 제자 양산보는 출세에 뜻을 버리고 초야에 묻히게 된다.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긴 ‘소쇄’처럼 양산보의 성품이 고고하고 절의가 곧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 묻히게 되었을까?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계보 따라 명멸하는 것. 스승이 유배당해 죽는 판국에 제자가 아무리 똑똑한들 살아남아 출세를 꿈꿀 수 있겠는가. 조광조의 죽음은 양산보의 추락을 예고하는 것.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조광조와 양산보가 권력의 암투에 휘말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을 것이니, 슬프다. 권력무상이여!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을 썼다는 송강정을 비롯해

 

식영정, 면앙정 등 유난히 정자와 누각이 많은 곳. 그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는 뜻도 되겠지만 권력의 암투에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도 된다. 유배와 항쟁의 역사가 면면히 흐르는 전라도 땅. 원한과 탄식, 울분과 체념의 자취가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특히 가사문학관에서 그 역사의 흔적을 실감나게 만날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案貧樂道)의 삶을 노래한 ‘성산별곡’ 임금에 대한 충정을 남녀의 애정에 비유한 ‘사미인곡’ 등 가사문학의 정수를 보았다. 실세(實勢)에 밀려난 사림(士林)들이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함을 슬퍼하며 수많은 시를 남겼다. 겉으로는 안빈낙도요 사랑이었으나 속으로는 원한이며 한탄이었을 것이다.

내가 특히 눈여겨 본 것은 허난설헌의 친필로 남아있는 규원가(閨怨歌). 케케묵은 한지에 번진 얼룩이 그녀의 한과 눈물로 느껴졌다.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었던 그녀는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우한 천재였다. 이 넓은 세상에 하필이면 왜 조선에 태어났을까,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나 아이를 갖지 못한 설움을 겪을까, 수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그녀의 한은 작품 속에 서리서리 맺혀있다. 그 한이 그녀를 27살에 요절케 했는지도 모른다. 천재는 단명(短命)하다지만 살아있는 날들이라도 행복했으면 좋았을 걸.

오늘날에도 수많은 허난설헌이 살아있다. 남편의 외도를 견디며, 고부갈등을 참으며... 시대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여자는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한다. 아직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니까. 남자보다 가정을 더 사랑하니까.

나의 담양 답사의 맥을 짚자면 가사문학과 대나무, 추월산으로 대별된다. 일부러 담양 장날을 잡아 여행 일정을 잡았으나 실제로 죽제품을 사고파는 진풍경은 보지 못했다. 값싼 중국산의 공격에 경쟁력을 잃어버린 담양 죽제품은 특이한 장날 풍경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죽녹원 입구에서까지 중국산 대나무 제품을 팔고 있는 데는 아연실색했다.

대나무박물관에서 본 한국의 대나무들은 퍽 인상 깊었다. 한국에 자생하는 수십 가지 대나무 수종을 박물관 뜰에 심어놓았는데 세죽이나 산죽 오죽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큰 발견이었다. 아는 만큼 본다더니, 그동안 산에 다니면서 대체 무얼 보고 다닌 건지 부끄러웠다.

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내가 정하는 목표는 문화유적과 특산물, 그리고 산이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문화를 나눈다. 영산강 유역의 서해안 평야지대와 섬진강 유역의 동쪽 산간지대를 갈라놓은 호남정맥이 담양 추월산을 지나간다. 그 산에 올라보지 않을 수 없다.

물안개 걷힌 담양호를 따라 추월산 아래 국민관광단지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올랐다. 8부 능선에 있는 보리암을 거쳐 정상을 돌아오는 왕복 5.2Km 길.

4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그 길을 6시간이나 걸었다. 호남정맥 마루금에 매달아놓은 리본을 보고 하산길로 착각해 내처 걸었으니 까딱하면 내장산까지 갈 뻔했다.

천길 절벽 위에 올라앉은 보리암은 지리적 위치나 조망의 즐거움이 경이롭다. 발아래는 이산 저산 사이로 흘러온 물이 담양호로 조용히 모여든 모습. 암자 옆으로는 90도 직벽. 그 절벽 사이에 잊었던 기억처럼 노랗게 피어난 원추리. 고개 들면 건너편 산정을 따라 금성산성이 길게 이어진다.

호남 3대 산성이라는 금성산성과 추월산은 임진왜란과 동학란의 마지막 격전지였다고 한다. 등산로 초입에 세운 비석에 언양 사람 아무개가 여기서 전사했다는 글을 읽고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호남 5대 명산에 꼽힌다는 秋月山은 진귀한 추월난이 자생하는 곳. 가을 보름달이 산봉우리에 닿을 정도로 높다 해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추월난이 어떻게 생겼는지 숲속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안 보이고 흰 밥알을 입에 문 며느리밥풀꽃만 어색하게 웃고 있다.

비를 실은 구름이 잔뜩 몰려와서 추월산 정상에서는 기대했던 조망이 없었다.  뒷배경으로 내장산과 무등산을 넣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러나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산을 내려와야 했다. 짙은 운무가 시야를 가리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어서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를 2시간여. 아이들 앞에서 불안한 내색을 비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했다. 능선이 좀 길다 싶었지만 그렇게 멀리 잘못 간줄 몰랐다. 역시 나는 방향치(方向痴)야. 길치(痴) 혹은 길맹(盲)이거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하산하는 우리를 보고 가게 할머니는 “웜메~ 쬐깐한 애기까정 델고 가서 시방까지 있었소 잉?” 시계를 보니 3시20분. 아침 9시반에 떠나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비와 배고픔에 젖어 아이들은 입술이 새파랗다. 개구리라도 잡아먹을 듯 간절한 눈빛이다.

뜨거운 라면을 먹고 가게를 나서는데 할머니가 말하셨다.

“젊었을 때 많이 놀러 다니시오 잉. 우리 할배처럼 되면 못논당께.”

휠체어를 타고 망연히 밖을 내다보던 가게 할아버지. 그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채 한쪽 팔마저 떨고 있었다. 나는 문득 지미 카터가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을 떠올렸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약이나 치료에 매달리는 대신 다양한 오락 활동을 하라. 이 충고는 정신과 육체 건강 모두에 해당된다. 변화와 실험, 여러 가지 휴양과 혁신, 모험으로 꽉 찬 병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인생이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멋진 구도로 늘어선 길을 따라 순창으로 달리면서  생각했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200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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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백두대간 대관령 코스가 비 때문에 무산된 이후 나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드넓은 초원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 한가로이 떠 가는 구름, 진귀한 야생화...

그 사이로 걸어가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놀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내 마음의 병은 마침내 치유되었다.

해발고도 800미터에 자리한 대관령 목동의 집에서 사흘을 묵을 수 있었던 건

올 여름 가장 추억에 남는 이벤트.

전국이 열대야로 들끓고있는데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대관령에서 나흘을 보냈으니

피서치고는 멋진 피서였다.



산이라기 보다 구릉으로 느껴지는 곳에 드문드문 지어놓은 목동의 집.

목부들은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일년내내 소떼(한우)를 돌본다고 한다.

초원에서 방목되는 소들은 비 바람을 견디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풀을 뜯는다.

옆집의 목부는 50대의 강원도 남자로 아들 셋을 공부시켜 객지로 내보냈다.

집 주변에 온갖 채소를 가꾸는 목부의 아내는 장독대 앞에 천궁을 심어놓았다.

"천궁 냄새가 독해서 벌레가 안오더래요. 된장 냄새 좋아하는 뱀도 못오더래요."

독특한 강원도 사투리가 정겹다. 고랭지 배추를 한 포기 갖다주며 먹어보란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소박한 웃음. 때묻지 않은 인심이 느껴진다.



어른 4명에 아이들 5명, 대식구가 해발 8백고지에 숙소를 정하고

여행 첫날 찾아간 곳은 청학동 소금강.

평창과 강릉을 잇는 6번도로를 따라 진고개를 넘었다. 해발 960m 진고개.

여기서 1시간 30분만 오르면 노인봉, 생각같아선 혼자서 훠이 훠이 산을 오르고 싶다.

구절양장 꼬부라진 진고개를 넘어가니 길 양편으로 연보라색 벌개미취가 한창이다.

청학동 일대엔 물놀이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물을 보자 환호작약하는 아이들을 구슬려 구룡폭포까지 오르기로 했다.

송림 속에 자리한 청학산장을 지나 십자소와 연화담을 보고,

소금강 유일의 사찰 금강사 앞에서 약수로 목을 축인다.

절을 지나니 골짜기가 훤히 터지면서 군데군데 철다리가 놓여있다.

군데 군데 시퍼런 소와 작은 폭포, 물굽이가 휘돌아가는 바위...



소금강 8경에 들어가는 '구룡비폭'은 내 기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주왕산 제2폭을 확대시킨 모습이랄까.

낙차가 크진 않지만 2단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힘차게 느껴진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일행들을 내려보내고 만물상까지 오르기로 한다.

올라가면서 보니 입구에서 구룡폭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느낌이다.

학이 노닐었다는 학유대, 구곡담, 만물상... 말 그대로 금강산 축소판이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만물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바위는 단연 귀면암.

금강산 귀면암이나 설악산 귀면암보다 훨씬 잘생겼다. 특히 우뚝한 코가 일품이다.

(코가 크면 뭐가 크다더라......... 물론, 코딱지가 크겠지 ^^*)

만물상에서 백운대 지나 노인봉까지 단숨에 오르고 싶다.

대관령에서 매봉-노인봉-진고개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을 언젠가는 걷게 되리라.

이 구간은 평화로운 초원지대가 펼쳐져 백두대간 중에서 전망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산 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걱정스러워 뛰듯이 날 듯이 산길을 내려온다.

새벽의 고속도로를 달려오면서 정몽헌 회장의 자살 소식을 들었었는데

문득문득 그가 생각나 마음이 우울했다. 그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 한 사람의 죽음이 수많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한다.

노벨 평화상, 왕자의 난, 대북사업... 등등 일련의 사건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어쩌면 한국적인 기업 환경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갔는지도 모른다.

기업가는 기업으로만 승부해야지 정권과 밀착하면 위험하다는 생각.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정권이 바뀌면 언제 칼을 맞을지...



여행할 땐 그 지역의 특성을 볼수 있는 장소를 골라야 하고

음식 또한 특산물이나 지역 고유의 먹거리를 맛보는 게 좋다.

여행 둘째날, 우리는 대관령의 진수를 보러 나섰다. 

우유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삼양대관령목장.

대관령 일대 600만평의 고산 유휴지를 개척해서 초지로 만들어놓은 곳이다.

목장을 한 바퀴 도는 길은 비포장도로로 시속 20킬로를 넘을수 없을 정도로 거칠다.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을 이루는 목장 일대에는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해발 850~ 1400m의 고원지대에 펼쳐진 초원에서는 소떼(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동해전망대(1,140m)에 올라서니 강릉, 주문진 앞바다가 시원하게 나타난다.

어디가 수평선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먼 바다에 뜬 배들이 하늘에 뜬 것 같다.



전망대 서쪽으로 황병산(1,407) 레이다 기지가 특이한 모습으로 서있다.

좋은 사진을 한점이라도 얻으려나 싶어 이리 저리 구도를 잡아보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초지 곳곳에 무슨무슨 영화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지만, 속물스럽게 느껴져 찍기 싫다.

가을동화의 은서 준서 나무, 영화 임꺽정, 중독, 야인시대 촬영지 등등 많기도 하다.

끝없는 초원을 천천히 달리다가 역광이 눈부신 곳에서 아이들을 내리게 하고

언덕 아래에서 위로 달리도록 연출을 해보았다. 그리고 연속 셔터로 사진 몇 장.

소황병산 아래 남한강 발원지점. 그 작은 물줄기가 목장 안으로 계곡을 이루며 내려오는데

잠시 차를 멈추고 발을 담근다. 햇살은 쨍한데 바람은 서늘하게 느껴지고...

목장 구경 때문에 늦어진 점심을 횡계읍에 나와 곤드레 나물밥으로 먹었다.

강원도에서 자생하는 식물 '곤드레'는 참나물 계통이라는데 담백한 맛이 깔끔하다.

식당 주인이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인지 벽에 걸린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다.



아이들 학습에 도움이 될까 해서 '한국자생식물원'을 들렀지만 아이들은 식물보다

아이스크림에 관심이 더 많았다. 야생화 이름 3개씩 외우라고 숙제를 냈더니 녀석들이,

"개불알꽃, 소경불알꽃, 매발톱..." 이런 이름만 외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 1천여 종이 자라고 있는 식물원 일대는 여름꽃들이 한창이다.

닥털을 뽑아놓은 듯한 '분홍바늘'꽃이 특이하게 기억된다.

처음엔 진분홍 꽃으로 피었다가 어느 순간 닭털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인지

전체적인 모양이 다소 엽기적이다.

하얀 두메양귀비 또한 기억에 남는다. 병약한 여인의 모습같다.

나리꽃에 나비가 앉는 모습을 포착하려고 300m 망원렌즈로 접사를 시도했으나 실패.

식물원의 그 많은 꽃들 중에 파인더에 담을만한 게 없다.

이런 걸 보고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하는 게 아닌지 몰라.



올 여름 여행은 아이들을 동반했기 때문에 계곡의 물놀이가 필수였다.

수항계곡에서 두 번이나 물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주려고 애썼다.

어름치, 쉬리, 기름종개 등 10여 종의 물고기가 잡히는 수항계곡은 자연이 살아있다.

어항을 놓아 피라미를 잡았다. 물살이 빨라 어지럽다.

그 빠른 물살처럼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흐르는지.

황태구이로 마지막 저녁을 먹고 나니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쉽다.

떠나기 전날 소나기 한줄기가 뿌리더니 날씨는 갑자기 초가을로 변했다.

"여기는 여름이 짧더래요. 한 보름쯤 덥다 말더래요. 이제 긴팔 입을 때 됐더래요."

목부의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한 겨울, 눈이 2미터 이상 쌓이는 곳에서 목부의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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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여행기 (1)
IP : 218.53.38.250   글 작성 시각 : 2004.08.04 00:01:57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의 ‘선암사’>



지난해 초파일 무렵 영화 ‘동승’을 인상 깊게 보았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승의 해맑은 그리움을 담아낸 그 영화는
한국 전통 사찰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했다.
안동 봉정사, 승주 선암사, 오대산 월정사 등에서
사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골라 찍었다는 그 영화...
어린 스님 ‘도념’이 뛰놀던 배경 속으로 첫발을 디뎠다.

절 입구의 무지개다리(승선교)를 배경으로 고아하게 서 있는 선암사는
화려한 단청이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독특한 모습의 대들보 위로 우물 모양의 천장이 특이한 대웅전.
비바람에 씻긴 겹처마 팔작지붕은 단청이 없어도 화려하고 장엄하다.
선암사는 우리나라에서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절로 꼽힌다.
대웅전 앞의 낡은 3층 석탑, 삼인당 연못, 강선루...
자연 암반 위에 쌓은 승선교는 다리 중간 아랫부분에 용머리 장식이 특이한데
전해오는 전설이 다리 모양만큼이나 이채롭다.
조선 숙종 때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했다고 한다.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는데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던 선암사는
사찰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영화 속의 배경으로 많이 나왔다.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취화선’ 에서 눈여겨보았던 배경이
선암사 일대에서 촬영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고답적인 절 풍경을 간직한 선암사도
바야흐로 현대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 같다.
경내에 신축 건물을 짓느라 기계소리가 요란했으니...
선암사를 유명하게 한 건 해우소와 승선교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우소와 무지개다리 승선교.
해우소는 그렇다 치고 승선교 앞에서는 머리가 갸우뚱한다.
한자로 풀이하면 신선이 승천했다는 뜻인데
원래 불교에서는 '신선'이라는 낱말이 없지 않았던가?
신선이나 선녀는 도교(선교)사상에서 나온 말인데
오래전부터 불교에 흡수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불교는 유,불,선 합작에다 민간신앙까지
흡수해서 그야말로 퓨전신앙이 된것이다.
대웅전 뒤에 산신각이 있나 하면, 용왕까지 모신 걸 보면
부처님 법이 참 너그럽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두 중생 제도를 위한 방편이겠지.



배롱나무가 유난히 많은 전라도 땅.
상사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승주에서 순천으로 나오는 길은
한가롭다 못해 졸립다.
울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섬진강 지나서부터 차량이 확연히 줄어드는 걸 느낀다.
한적하고 조용하고 옛날의 운치가 아직 남아있는 고장,
그래서 나는 전라도 땅을 좋아한다.

순천만 갈대밭 입구에서 관리인을 만났다.
“갯벌 체험장이 어딘가요? 갯벌에 들어가도 되나요?”
아이들에게 갯벌의 생태를 보여주고 싶어서 물었더니
“갯벌 체험이니 탐사니 그런 거 안 해야 됩니다.
서해안 갯벌도 그래서 망쳤어요.
자연 그대로 보존해야지 사람이 들어가면 다 망쳐요.“
준엄하게 나무라는 관리인의 말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순천만은 갯벌을 살리고 보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단다.
다행이다. 사람에게 즐겁다고 자연을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다.

짱뚱어탕이 별미라 점심으로 청했더니
식당 주인은 올해 짱뚱어가 안 잡힌다며 울쌍이다.
뻘밭에서 자라는 짱뚱어로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인데
올여름 무더위 탓인지 생태계 파괴 탓인지
짱뚱어가 통 안 잡힌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위협하는 재앙이 ‘환경파괴, 교통사고, 우울증’이라고 한다.
3가지 모두 인류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대병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짱뚱어탕 대신 장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뻘밭에서 자라는 ‘맛’조개를 비롯해 특이한 밑반찬이
장어탕보다 더 맛있다. 힘 내자, 힘!

배를 빌려 타고 순천만 갈대 사이로 들어섰다.
15만평 드넓은 갈대밭 사이로 수로가 열리더니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엔진 소리에 놀랐는지 팔뚝만한 숭어가 물 위로 뛴다.
드문드문 드러난 갯벌엔 철새들이 한가롭게 앉아있다.
선장의 말에 의하면 한겨울 순천만은 철새들의 낙원이라고 한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온 철새들이 황금빛 갈대 위를 날아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해질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정말 좋은 그림이 되겠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고기들이 들어왔다 나가는데
한번 들어온 고기가 나가지 못하게 함정으로 세워둔 말뚝(정치망)이
V자 형태로 줄지어 서 있다.
남해안에서 보았던 죽방염과는 다른 분위기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오고 뱃전에 앉은 여심은 즐겁다.
선장의 구수한 사투리와 물을 박차고 높이뛰기하는 숭어,
내가 저를 바라보는지 저희가 나를 바라보는지 모를 철새들...
배가 여자도(섬) 근처까지 나아갔을 때 멀리 고흥 팔영산이 보인다.
닭벼슬 같기도 하고, 굴밤 맞은 머리 같기도 한 모습이 한눈에 알아보겠다.
“겨울에 한번 더 오시쇼 이~ 잘 해 드릴랑께~ ”
선장의 정겨운 인사가 아니라도 올 겨울엔 순천만에 다시 가보고 싶다.
황금빛 갈대 사이로 오밀조밀 이어지는 수로와
짱뚱어 잡는 여인의 굵은 장딴지와 철새들의 군무를 보고 싶어서.



전라남도 일대를 샅샅이 둘러보자는 계획대로 여수를 찾아간다.
다른 건 몰라도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船所)와
진남관은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선소에는 굴강, 세검정지 초석 등 거북선을 만들고 수선하던 유적이 남아있다.
나주 출신 나대용 장군과 이순신 장군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는 거북선.
도크의 크기로 어림해 보면 배 2척 정도를 동시에 건조했을 만하다.
바다에서 육지로 오목하게 들어온 지점에 도크를 만들고
이순신은 거북선을 건조, 수리하거나 감추어두었다고 한다.
독창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거북선을 만들고
수문을 열어 배를 진수할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고 정주영 회장이 만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자랑하면서
우리나라의 조선능력을 세계에 과시했다던 일화가 생각나 웃었다.

돌산대교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20여분을 걸어 진남관을 찾았다.
7월말의 여수는 햇살만 뜨겁게 내리쬐고 바람 한점 까딱 않는다.
시가지에는 종려나무가 심어진 중앙분리대 화단이 특이하다.
여수는 세계적인 미항(美港)이라고들 한다.
특히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에 올라보면
여수항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돌산대교 너머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비취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남관은 우리나라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로
지름 2미터가 넘는 기둥이 68개나 받치고 있는 웅장한 객사다.
객사는 선왕의 위폐를 모시고 기일에 제사를 올리며
아침마다 조회를 하면서 한양 쪽으로 절을 올리던 곳이다.
옛날 관아의 중요 건물로 ‘객사’와 ‘동헌’이 짝을 이루는데
동헌이 수령(지방)의 것이라면 객사는 왕(중앙)의 것으로
앙의 직접 통치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해를 향한 암자, 향일암에서는 일출을 봐야 제 맛이다.
암자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고 뒷날 새벽 5시에 일출을 보러 나서는데
수평선에 해무가 자욱하여 장엄한 일출을 못볼 것만 같다.
신새벽인데도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암벽 사이를 통과하여 절집에 이르렀다.
향일암은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나는 개인적으로 낙산사 홍련암이 가장 마음에 든다.)
향일암이 속한 금오산은 ‘자라 오’자를 쓰는데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자연 문양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많다.
향일암에서 내려다보는 지형 또한 바다로 기어드는 거북 형상이다.
기대했던 만큼 멋진 일출을 보진 못했지만
여름날 아침 남해안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감명은 깊었다.
정초엔 해맞이 관광객들만 수천명씩 몰려온다는 향일암.
그래서 그런지 상인들 인심이 사납다. 관광지 인심이 다 그렇지 뭐.

어제 갔던 길을 되짚어 오늘 여수를 빠져나왔다.
벌교천에 놓인 다리, ‘홍교’를 보려고 벌교를 찾았다.
선암사 승선교와 비슷한 벌교 홍교는 옛모습에 현대식을 추가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거의 없어보이는 벌교 땅.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둘러보려고 관광안내소에 들렀더니
간소한 프린트물 몇 장을 건네준다.
‘태백산맥 기행로’로 이름 붙은 프린트물에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활동했던 무대가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좌익이 우익을, 우익이 좌익을 사형집행하던 소화다리,
정하섭과 소화가 사랑을 나누었던 현부자집 제각,
빨치산의 시체가 효시되었던 역전...
작가 조정래는 역사적으로 가장 굴곡이 심했던 시대를 투영시키는데
벌교를 선택했고, 철저한 고증과 자료수집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 문단사에 큰 획을 그은 소설 ‘태백산맥’과 그 무대인 벌교.
그러나 지금도 그 소설을 두고 작가의 시선을 의심하며
소설의 무대를 복원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단다.


순천만에서 보았던 닭 벼슬 같은 산봉우리, 고흥 팔영산 초입.
한때 호남의 4대 사찰(화엄사, 송광사, 대흥사)로 꼽히던 능가사는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 하여 이름을 바꿨다.
입구의 사천왕상부터 대웅전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득한 느낌.
활짝 열어젖힌 대웅전 안에 부처님이 깊은 상념에 잠겨 계신다.
“중생들아, 이 땡볕에 뭐하러 왔냐?”측은한 듯, 나무라는 듯, 부처님이 나지막히 말씀하신다.
능가사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30여분을 오르니 흔들바위가 나타난다.
말이 흔들바위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변심한 연인의 마음이 이럴까?
1봉부터 8봉까지 암봉마다 이름이 붙어있는 팔영산은 해발 608m로
산세가 험하고 기암괴석이 많다.
웅장하면서 섬세하고, 장대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의 암릉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발 아래를 보자니 아름다운 다도해를 놓치겠고, 수평선을 보자니 발 아래가 위험하다.
군데군데 굵은 쇠사슬과 철제 스텝이 설치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슬아슬한 절벽을 올라 우람한 암봉들이 이어지는 팔영산은
역동적인 암릉미가 월출산에 버금간다. 규모가 좀 작다 뿐이지 암릉미는 대단하다.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대마도까지 볼수 있다는데 오늘 날씨로는 어렵겠다.
나로서는 발 아래 펼쳐지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절경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전국이 불볕 더위로 난리라지만 팔영산 능선에는 바람이 달고 시원하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서서 바람을 맞는 기분이라니!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전해져 팔영산이 되었다던가.
올라오면서 계곡에 물이 바짝 마른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산 위에서 보니 팔영산의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 저수지에 물을 받아놓았다.
팔영산은 고흥반도의 해안 평야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8개의 봉우리를 다 밟고 탑재로 내려와 원점회귀한 시각이 오후 3시.
입구의 매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청했더니
자칭 ‘팔영산 산신령’이라는 중노인이 다가와 썰(說)을 풀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는 그는 베트남과 사우디를 거쳐
미국에 3남매를 두었고, 우리나라에 8남매를 두었다고 한다.
배 다른 자식을 세계 각국에 흩어놓고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일까?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처럼 세계를 누비고 다니다가
십수년 전에 고국으로 돌아와 팔영산 기슭에 안착한 남자.
검붉게 그을린 얼굴과 헐렁한 런닝셔츠가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이지만
그의 삶과 생각은 코스모폴리턴 같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
세상에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좁은 우물 속에 들어앉아 손바닥만한 하늘이
전부인줄 알고 사는 내 삶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자. ‘인간은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삶을 완성한다.’


한여름 등반으로 지친 몸을 잠시 쉬어보려고 보성으로 차를 몬다.
그 유명한 차밭을 일일이 둘러보기엔 시간도 짧고 시기적으로도 늦다.
봄에 새 잎이 돋을 무렵 차밭에 가면 참새 혓바닥같은 새순들이
뾰족뾰족 올라오는 모습이 정말 예쁜데...
보성군은 녹차를 아이템으로 여러 가지 관광상품을 개발해 성공했다.
전국으로 보급되는 녹차는 기본이고, 녹차를 먹인 돼지(녹돈)며
녹차를 바닷물에 우려낸 녹차해수탕 등.
여행한다는 사람치고 보성 녹차밭에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니
보성군 세수의 상당부분이 관광수입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특히 율포해수욕장에서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성만이 눈앞에 펼쳐지는 바닷가에 녹차해수탕을 만들고
그 옆에는 해수풀장까지 갖추었는데 요즘 애들 말로 ‘분위기 짱’이다.
녹차를 우려낸 해수탕에 들어앉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풀장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을 즐겁게 내다보기도 한다.
밤이 되자 풀장에는 라이브 공연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면서
야간 수영을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날씬한 비키니 수영복의 아가씨, 과감한 노출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남자.
여름바다의 낭만은 파격과 자유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율포 해수풀장이
설악산 워터피아나 용인 캐러비안베이보다 낫다.

출처 : 비공개
글쓴이 : 익명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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