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괴롭다.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가 점점 어렵고 싫다. 가식이나 허구로 포장된 자신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를 피력하자니 생이 너무 남루하다. 이건 내가 살고자 했던 인생이 아닌데,

지금 와서 어떻게 고쳐 살아야 하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풀리지 않는 고차방정식이다.

산다는 건 물처럼 흘러갈 뿐이라고, 큰 의미를 두지 말고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면 된다지만

지금 나는 늪에 빠진 느낌이다. 팔 다리가 뻘에 빠진 채 겨우 머리통만 내놓고 있다.

허우적댈수록 몸은 힘들고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다.


두어 달 전, 한동안 연락 없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쪽 땅 끝 해남이란다.

은퇴 후 고향인 나주로 돌아가 느긋한 전원생활을 즐기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일까?

놀랍게도 친구는 사찰로 들어갔단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두 내외가 동시에.

남편은 장흥의 어느 절로, 자신은 해남의 어느 절로.

평생 자식들 건사하느라 내 하고 싶은 걸 못 해봤어. 이제 진짜 내 인생을 살아볼 거야.

나이 더 먹으면 부처님 일도 못하잖아. 육신이 멀쩡할 때 몸 보시(布施) 해야지, 남편도 기꺼이 동의했어.”

딸 둘은 출가했으나 막내아들이 아직 취업준비생인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을까. 불심이 굳은 그녀가 수시로

절에 드나드는 건 알았지만 속가의 인연을 정리하고 절집으로 거처를 옮길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남편까지.

그 집 아들은 제 친구들에게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서 독립하셨어하고 우스개처럼 말한단다.

졸업한 지 2년이 넘도록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아들의 자립을 기다리기엔 마음이 너무 조급해서

친구는 부득불 출가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더 늙으면 절집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것 같아 남편을 부추켰다.


여보, 우리 생전에 부처님 일이나 하고 갑시다. 자식들한테는 할 만큼 했잖수. 그 애들 덕 볼 생각은 말고,

우리 노후는 우리 스스로 책임집시다. 가난한 절에 들어가 살림 살아주는 것도 큰 공덕이잖아요.

새벽 4시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한 뒤 정성스럽게 예불을 올리고 나면 가슴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차오른다고

친구는 말했다. 속세에서 느꼈던 어떤 종류의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였다.

60평생 살아온 날들이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을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는 생각. 먼 길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건

자신의 운명이자 속세와의 인연 때문이었을 뿐, 원래 자신의 자리는 지금 여기라는 걸 느낀다고 했다.

수도인(修道人)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일까?


촉망받던 아들이 어느 날 불가에 귀의해 부모를 까무러치게 했다는 얘긴 가끔 들었지만

은퇴한 부모가 나란히 절집에 들어갔단 얘긴 처음 듣는다.

세상 풍파 다 지나고 이제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즐거워하고 놀러 다닐 나이에 출가라니.

그 적막을 어떻게 견디며 사니? 내 물음에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수도하는 사람이 적막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살겠어? 수도는 적막해야 잘 되는 거지. 와글와글 시끄럽게 살 거면

속세에 살지 뭐 하러 절에 들어오겠어? 자기는 글 쓰는 사람이 어째 그런 말을 해?

, 그랬었나? 내가 글 쓰는 사람이었나? 글 쓰는 사람은 생각의 범위가 넓고 아량이 깊어야 하는 건데,

 적막과 고독을 양식으로 삼기는 수도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내가 너무 단순무식하게 물었구나.


한때 박경리와 박완서를 꿈꾸다가, 자신이 얼마나 함량미달인지를 깨닫고 재빨리 마음 정리는 했으나

나는 여전히 문학 주변을 서성일 때가 많다. 외로운 아웃사이더처럼 문 밖을 서성이며 잘 쓰는 작가들을

눈부시게 바라본다.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허황된 욕심으로 그들을 따라잡기엔 내 힘이 부친다.

필력도 부실하고, 깡도 끈도 끼도 없다. 작가도 분수를 알아야 한다.

이순(耳順)을 넘어 자신의 분수를 깨달은 친구처럼 나도 내 자리를 찾고 싶다.

사회가 인정하든 안하든 주위에 민폐 끼치지 않고 소신대로 살 수 있다면 나름 행복한 삶이 될 텐데.

나는 여태 흔들리는 소신으로 부박한 삶을 이어온 게 아닌지. 그래서 이거다, 하고 붙잡고 늘어질 게 없는 건 아닌지.


지금까지 나는 사이버에 만든 나만의 꽃밭을 십년 넘게 가꾸어왔다.

검색하다 마음에 들어 즐겨찾기에 추가한 사람들이 백 여 명에 가까웠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블로그를 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들의 블로그를 맞방문 해보고 깜짝 놀랐다.

80%의 블로거가 이미 자신의 블로그를 폐쇄했거나 비공개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한동안 열심히 들락거리던 그들이 클릭 한 번으로 정체를 감추고 교류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제 네티즌들은 컴퓨터보다 편리한 스마트폰에 익숙해지고 블로그보다 가벼운 카스에 맛 들인 듯하다.

인문학적 공감보다 SNS에 열광하며 좋아요를 누르는 시대. 긴 글은 패스, 글보다는 동영상 우선인 시대.


세상은 급변하고 인심도 어지러이 나부끼는데 나만 홀로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는 기분.

이 언덕을 내려가야 할지 어떨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늦은 나이에 출가를 감행한 친구처럼 나도 나만의 영지(領地)를 찾아야 할 텐데, 그곳이 어딘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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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을 처음 안 순간부터 설레었다.

대개의 오지들이 그러하듯 마을 주민들만 알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잡목이 우거진 숲과 무수한 자생식물, 그리고하늘을 가리는 그 숲에서 심심찮게 심마니들도 만날 수 있다는 곳.

무명에 가까운 자연에 스며들고 싶어 내 영혼은 목이 말랐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자료가 흔치 않은 영월 접산(835m).

시쳇발로 폭풍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서쪽 마차탄광 쪽으로 트레킹 루트가 새로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 다니던 임도는 초행자들이 번번이 길을 놓치기 일쑤여서 올 여름 지자체에서 선심을 쓴 모양이다.





내가 만난 여름 중 가장 가혹했던 올해,

여행을 접고 집 근처만 뱅뱅 돌았던 시간이 아깝고 억울해서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기왕이면 먼 곳으로,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곳으로, 야영할 수 있는 곳으로.

접산 가는 길은 쉽고도 어려웠다. 어쩌면 세상 모든 길이 그럴 지도 모르지만.

마차탄광 건너편, 눈앞에 빤히 보이는 새 길을 보고 진입했는데도 들머리를 놓쳐 엉뚱한 길로 차를 몰았다.

세상사 만만하게 볼 일 별로 없다.

길은 뱀처럼 구불구불 경사를 높이며 올라가는데 부분 포장으로 가파르기 짝이 없고

어느 지점에선가 다른 임도와 얽혀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임도, 길섶에 풀이 우거져 가시덤불이 차체를 마구 긁어댄다.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꾸역꾸역 또 올라간다.

5부 능선쯤 왔을 때 외딴집 하나를 만나 염치불구하고 마당으로 들어서 물었더니 접산 가는 길이 맞단다.

팔순 노파의 말을 믿고 다시 차를 몰았으나 길은 7부 능선쯤에서 딱 끊기고 말았다. 누군가의 농장에 닿아있는 길,

가파른 산 위로 풍력발전기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귀가 어두운 팔순 노파의 말을 믿은 내가 어리석지 누굴 탓하랴.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깨닫는 순간의 차이라고 한다.

누구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지만, 고수는 빨리 깨달아 뒤돌아 설 줄 알고 하수는 깨달음도 늦을 뿐 아니라

깨닫고도 미련을 못 버려서 그 길을 계속 간다는 거다.

길에 관한 한 나는 영원한 하수가 분명하다. 인생길은 말할 것도 없고.

일몰 시간이 넉넉하다 싶었는데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한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이 바빠졌다.

생각해보니 처음에 든 길이 맞다.

광산 입구를 통과해 임도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광산 입구를 무시하고 들머리를 찾고 있었으니.

광산은 광산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드나든다는 생각이 길을 놓친 주범이다.

고정관념만 버리면 살아가는 게 참 쉬운데, 왜 그게 그리 어려운지.

교과서 속에서만 답을 찾고 살아온 사람들의 한계라고나 할까.





결국은 옛길로 접어들어 접산 가는 길을 찾았다.

들머리가 움푹 패고 폭우로 자갈이 휩쓸려 내려와 군데군데 길이 끊어진 험난한 임도.

산악자전거만 가끔 오르내린다는 길은 고도를 높일수록 숲이 우거져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옆지기 눈치가 보인다.

일몰이 가까운데 사진 찍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지청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사진에 대한 갈망과 정상에 대한 갈망 사이를 오가며 숲길을 달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발아래 생각지도 못한 풍광이 나타났다.

겹겹이 둘러선 산줄기 사이로 굽이치며 흘러가는 동강! 연못에 빠진 보석 한 점처럼

골짜기 사이에 황홀한 얼룩으로 빛나는 동강!

감개무량이란 단어가 이럴 때 적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들머리를 놓쳐 허비한 시간과 위험을 감수하며 올라온 시간들이 상쇄되는 순간.

기우는 햇살은 8부 능선 위로만 빛이 남아있고 음영이 짙은 산들은 오묘한 입체감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황송해서 나는 허겁지겁 셔터를 눌렀다.

산 위에 더 멋진 풍광이 있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정상은 그리 멀지 않았고, 조망은 강원도 여느 산들처럼 탁 트여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 , . 무엇보다 아무도 없다는 게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기를 쓰고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와 실크스카프처럼 부드러운 바람,

푸른 화선지에 마음대로 붓을 놀리는 구름과, 저무는 해가 만들어낸 황혼.

산 위의 하룻밤을 위해 달려온 먼 길과, 잘못 든 길과, 문득 나타난 정경이 접산의 조망으로 집결되어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 밤도 잠들긴 틀렸다.

접산은 돌리네 현상(doline 카르스트지형의 특징에 해당되는 오목지형)으로

땅이 꺼지면서 산줄기가 겹쳐진 형상으로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겹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강 지류를 따라 골골 첩첩한 산들 사이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관을 두고 뒷날 산을 내려오기가 망설여졌다.

여기 다시 오기는 힘들겠지. 나는 점점 나이 들고, 장거리 운전이 힘들어질테고.

지금까지 그랬듯 언제나 길을 놓치곤 뒤늦게 후회하거나 돌아서지 못할 지점에 닿아 있겠지.

잘못 접어든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만날 수도 있지만 생의 대부분을 엉뚱한 길에서 허비한 자신이 서글프다.

나는 아직 길을 찾지 못했나? 내가 정말 걷고 싶은 길이 있기라도 했던가?

영원한 길치로 지도에도 없는 길을 찾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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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가 출현했다.

간간이 옷자락 스치듯 슬쩍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더니, 마침내 뭍에 오르기로 결심했나 보다.

멀리 보이던 해송 숲이 없어지고, 근처 사물들이 지우개 지나간 자리처럼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이런 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앉아서 안개를 맞이하기보다 안개를 잡으러 나가야 한다.

차가운 바다의 입술로 육지의 따뜻한 볼을 부비며 부끄러운 듯 베일을 드리우는 해무를 가까이 더 가까이 보고 싶다.

내륙의 안개가 은밀하고 몽환적이라면, 해안의 안개는 농염하고 도발적이다.

해풍이 밀어낸 안개가 뭍으로 진군하는 모습은 가히 위협적이다.

해안선을 점령하고 육지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모습이 소름 끼친다.

형체 없는 수증기가 구름을 이루듯 해무는 잠깐 사이에 육지를 가두고 그의 포로로 삼는다.

그가 스스로 떠날 때까지 아무도 그를 벗어날 수 없다. 나쁜 남자인줄 알면서도 끌리는 것처럼 나는 번번이 안개에 매료되곤 한다.

입은 옷 채로 카메라를 챙겨 해무를 만나러 나간다.

나쁜 남자의 휘파람 소리에 끌려 담장을 넘는 처녀처럼 내 가슴은 마구 요동친다.





다급한 마음으로 안개를 잡으러 방파제로, 마을로, 숲길로, 해안으로 헤매다니며

나는 고기잡이도 바람잡이도 아닌 안개잡이가 된다.

카메라 하나로 안개의 심장부를 노리는 안개잡이. 국어사전이 허용하지 않는 낱말로 나를 규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안개가 먹어버린 바닷가 마을은 정복자의 발아래 고요하게 엎드려 있다.

그물을 거두러 바다로 나가려던 어부는 일찌감치 돌아와 아침을 먹고 있고, 정박한 배들은 뱃전 가득 해무를 싣고 있다.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통발에도, 낮은 지붕 위에도, 생선과 빨래가 함께 널리는 빨랫줄에도 안개가 지키고 있다.

나는 안개가 지운 것들을 증명하듯 사진을 찍는다. 안개의 실체를 인증하는 것은 사라진 것을 담는 것 아니던가.

화려하거나 누추하거나 혹은 과장되게 빛나던 것들은 사라지고 무채색에 가깝게 평준화가 되는 풍경.

잡다한 선과 면과 색이 사라진 풍경 속에서 모든 존재가 평등해지는 느낌이랄까.





바닷가 근처에 자리잡은 조선소 작업장도 안개가 접수해버렸다.

크레인이 바쁘게 오가고, 철판에서 용접불꽃이 튀어 시선을 돌려야했던 때가 있었는데,

텅 빈 작업장에는 바퀴가 내려앉은 트럭에 안개만 가득 쌓여있다.

일자리를 찾아왔던 사람들이 떠나고 동네는 안개만 남아 둥지를 틀고 있다. 원룸, 투룸, 그 많은 방들도 전부 안개가 차지하고 있을까.


문득 수평선이 사라진 바다를 바라본다.

하늘과 바다가 접속한 공간엔 오래전에 사라진 유령선이 하나 둘 나타나고,

방파제를 지키던 등대는 귀신고래 울음 같은 무적(霧笛) 소리를 흩뿌린다.

미욱한 나는 안개를 잡아 카메라에 가두며 백사장을 걷고 몽돌밭을 홀로 헤맨다. 때론 돌부리에 걸리고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

생각해보니 내 살아온 날들이 안개잡이 같다.

가까운 듯 멀리 있는 걸 잡으려고 허위허위 달려갔고, 다가갈수록 멀어져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걸 염원했다.

사실 그 몽매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실체도 없는 그리움을 안고 어딘가를 한없이 헤매는 몹쓸 병을 앓아온 세월.

 바람구두를 신고 머나먼 곳을 찾아나서는 마음의 방랑벽. 언제쯤이면 이 병이 치유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태생적으로 안개잡이였는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안개 낀 바닷가에서 기이한 장면을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엔 정신질환자의 해프닝인줄 알고 발을 멈추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해주었다.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동영상을 찍고 있던 그는 안개 속에서 1인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잡은 고기를 카메라 앞에 들이대며, 오늘의 조황과 낚시정보를 열심히 피력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흡사 뭔가에 홀린 듯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혼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사람, 누가 앞에 있는 것처럼 과장된 몸짓까지 곁들이는 모습이 어릿광대 같아 우스웠다.

그러나 돌아서 생각하니 그 어릿광대는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내 기분에 빠져서, 내 생각에 빠져서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헤매며 안개를 잡으러 다니다니.

누군가 나를 본다면 정신질환자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게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 만큼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이른 아침, 썰물이 진행되는 바닷물 속에서 조개를 잡고 있는 한 남자를 본다.

허리까지 오는 물속에서 삽으로 모래를 퍼면 그 속에 조개가 몇 마리씩 나오는 모양이다.

얼추 육십이 넘어 보이는 얼굴은 안개 속에서도 검게 그을려 있다.

안개 낀 날을 골라 조개잡이에 나선 남자는 혹시 자신에 일생에 부끄러움을 갖고 사는 건 아닐까.

안개를 핑계로 길을 나서곤 하는 어떤 안개잡이처럼.





해무가 출현하는 유월부터 여름 한 철, 나는 카메라 가방을 현관 앞에 내놓고 지낸다. 안개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가려고.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탁 트인 시야는 우주처럼 넓고 깊고 아득해지는 날,

안개잡이는 황홀한 방랑을 위해 전화기도 꺼버리고 홀로 길을 나선다.

이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좋다. 어차피 인생은 편도여행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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