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익힌 게 얼마나 고마운지,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나를 문맹에서 구해준 제도권 교육과 문학적 감수성에 늘 감사한다.

 뜻 깊은 문장이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나면 새록새록 그런 생각이 든다

양안시력 1.0을 유지한 덕분에 나는 요즘도 맨눈으로 신문을 보고 책을 읽는다.

최근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을 읽고 한글을 깨친 게 또 한번 고마웠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책도 있지만

'투명인간'속의 이야기는 내가 지나온 세월이 세밀화처럼 묘사되어 놀라웠다. 

이 소설은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스토리로

1960~70년대 가난하고 식구 많은 집 속사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개인사를 통해 한 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치는 소설은 많지만 성석제의 소설은 특별하다.

작중 화자의 시점이 수시로 바뀌는 독특한 구성부터 독자를 긴장시키더니

나를 잠재우지 않고 달려가던 필력과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느껴지던 짠한 감정까지

아, 난 여태 이런 형식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간만에 좋은 소설 읽었다.

나의 시력에, 나의 문해력에, 나의 감수성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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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살던 집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주전 바다였다.
어느 모퉁이를 돌면 어떤 나무가 있는지 알 정도로 익숙했다.
왜 바다에 밭 田자를 붙였을까 궁금했는데
바닷가 지명 중에 田이 붙은 지역은 대개 바다를 표기한 거라나.
주(朱)는 븕[赤] 또는 밝이란 뜻이며, 전(田)은 바다의 의미이므로
주전은 ‘밝은 바닷가’라는 뜻이라고.....
 
 

 

 
순박하고 조용했던 마을이 언제부턴가 변신을 거듭하더니
한 집 건너 카페, 한 집 펜션. 한 집 건너 식당
얼마전에 갔더니 도로 경계석도 칼라풀하게 변신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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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바람이 코끝에 다가와 정신이 바짝 드는 겨울이다.
아침이면 서릿발에 얼어붙은 잔디가 화살촉처럼 은빛 날을 세우고, 앞산의 숲은 고적하게 야위었다.
겨울이면 비로소 드러나는 가난한 숲.
그 소슬한 풍경 사이로 밤이면 별들이 들꽃처럼 피어난다. 그지없이 평화롭다.

겨울은 생명을 잉태하는 자연의 자궁이다.
봄 여름 가을을 살 수 있도록 원동력을 기르고 싹을 틔우는 터전이다.
인생에서도 힘겹고 추운 겨울을 만날 때가 있다. 지독한 한파와 맞닥뜨려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한다.
추위에 힘들어도 겨울을 견뎌야 하는 것은 다시 꽃피워야 할 싹을 키우기 위함이다.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일어날 힘을 단련하면서
견딜만한 가치가 있음을 속삭인다. 겨울은.

<김종걸 '어느 겨울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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