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평생에 이처럼 많은 별을 본 것은 처음이다. 우주의 모든 별이 소백산 머리에 다 모여든 것 같다.
무수한 들꽃들이 피어 흐드러진 밤하늘. 별들이 연출하는 우주쇼는 황홀하기 이를 데 없다.
잠깐 사이에 별똥별이 꼬리를 그으며 사라지고… 아, 누군가 이승의 아름다운 영혼 하나가 저 세상별이 되는구나. 소백산의 밤은 하늘나라 호적 정리를 모두 볼 수 있다. 이 밤에도 몇몇 영혼이 별똥별로 지고, 새 별로 태어나고 있으니.
영주와 단양을 잇는 구절양장 길을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에 의지해 차를 달려왔다. 경북과 충북의 경계 지점, 죽령에 이르렀을 때가 새벽 2시 반.
사방은 짙은 어둠 뿐, 냉큼 코끝을 베어 가는 바람이 매섭기만 했다. 아이젠과 스패츠, 방한모와 방풍의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산행을 시작했지만, 강추위와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넘었다.
죽령 고개에서 소백산 천문대까지, 얼어붙은 눈길을 걸어 오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실컷 행복했다.
무슨 별이 저렇게나 많을까? 천체관측소를 여기 세운 이유가 다 있구나. 우리 나라에서 별이 가장 많이 보이는 곳이 소백산이라지.
쏟아지는 별사태를 보며 산을 오르는 기분. 야간산행의 묘미를 한껏 음미하면서 걷는 발걸음은 비브람과 아이젠의 무게와 상관없이 가볍기만 했다. 얼음조각처럼 차가운 바람, 파르르 떨고있는 별무리, 발 밑에 바삭거리는 눈, 눈, 눈.
떠나오기 전에 새 등산화에 왁스를 먹여 공을 들이고 아이젠도 점검을 했는데, 한 시간도 걷지 못해 아이젠 한 쪽이 달아났다. 신발이 새것이라 발에 익지 않은 데다, 발이 시려 감각을 잃은 탓에 아이젠이 빠진 줄도 모르고 걸었다.
얼어붙은 눈길을 찔뚝거리며 걷다가 마침내는 한 쪽 아이젠마저 고장 났다. 시린 손으로 아이젠을 몇 번이나 고쳐 매주는 남편이 안쓰러워 아이젠을 벗어버렸다. 스틱을 가져가서 천만 다행이었다.
죽령에서 오를 땐 왼쪽으로 단양 시가지의 불빛이 정다웠고, 천문대 가까운 능선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영주의 불빛이 따사로웠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을 느끼며 제2 연화봉을 거쳐 천문대에 이르렀다.
낮은 촉수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을 쳐다본다. 모두 잠든 이 밤에 머나먼 우주를 관찰하며 홀로 신비에 젖어있을 천문학자를 생각한다. 그의 뇌리엔 온통 별만이 가득할까, 속세의 어떤 인연도 그립지 않을까? 해발 1,383 고지에 홀로 앉아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저 사람은 외롭지도 않을까?
천문대를 지나 제1 연화봉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반달은 단양으로 넘어가고 해가 뜨려는지 동녘이 희붐하게 개었다.
행여나 행여나 하고 바라보아도 좀처럼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빛으로 사방을 밝혀놓고도 한참을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 마침내 떠오른다. 한껏 달구어진 쇳덩이 하나가 공중으로 미끈 솟아오른다. 이제 막 용광로에서 퍼낸 쇳물 같다.
솟아오르는 해를 직시하고 있으니 해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올 것 같다. 해를 들여 마셔 볼까,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한껏 들이켰다. 가물거리는 눈썹 사이로 커다랗게 다가오던 불덩어리가 한순간 내 입 속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
삽시간에 밝아진 산들은 눈이 쌓여 장관이었지만 비로봉 정상은 칼바람만 드셀 뿐이었다. 겹겹이 어깨를 맞댄 산들을 눈물겹게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내 인생에 넘어야 할 산들도 저만치 많을까, 저만치 높을까.
정상에 서서 해를 들이마시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란히 서 있던 남녀가 가볍게 안고 키스하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한 순간 그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입맞춤할 수 있는 젊은 연인들.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들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소백산은 주능선 길이만도 장장 20Km.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의 소백 3봉은 물론, 크고 작은 봉우리의 평균 고도가 1,394m로 지리산 연봉에 육박하는 높이다. 작을 小소자로 겸손하게 서 있지만 결코 작지 않은 산이다.
골짜기 물줄기는 멧줄기가 갈라놓는 법, 소백산은 남한의 물줄기를 온전히 양분하고 있다. 낙동강과 한강의 강줄기를 그 꼭지에서 갈라놓으며, 경상도와 강원도, 충청도 등 중부지방도 깨끗이 나누고 있다.
비로봉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대피소 안은 발 들여놓을 틈도 없어 건물 뒤쪽 바깥에서 버너를 피우고 웅숭그린 채 국밥을 먹었다. 끓는 국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로 식어버렸다.
혹한과 강풍이 겨울 소백산의 매력이라지 만 한 끼의 밥이 걱정스러우니 어찌할까. 배낭에 넣어온 밥이 꽁꽁 얼어붙어 버렸으니 말이다. 꿀꿀이죽 같은 김치국밥이 단지 뜨겁다는 이유만으로 천하일미로 여겨졌다.
비로봉에서 국망봉, 신선봉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쌓인 눈은 깊었지만 해가 떠올랐기 때문에 추위는 새벽보다 고개를 숙였다.
국망봉에 잠시 서서 신라 마의태자를 생각한다. 천 년 전 마의태자는 망국의 한을 안고 소백산 한 봉우리에 올라 남쪽 멀리 있을 경주를 바라보며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 마의태자가 올랐던 봉우리의 이름이 국망봉이 되었다던가…
예정대로라면 상월봉 지나 늦은매기고개에서 왼쪽으로 꺾어 을전으로 하산했겠지만 러셀이 되어있지 않아 계획을 바꾸었다. 이제 신선봉을 넘어 구인사로 내려가는 길뿐이다.
1,244고지까지 줄기차게 걸으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본의 아니게 한겨울 소백종주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언제부터 소백산 종주를 별러왔건만 여의치 않았는데 정말 산신령이 도우셨나?
그러나 소백종주는 역시 만만찮았다.
구인사 계곡이 그렇게 깊은 줄 정말 몰랐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게 당연하련만,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구인사 계곡, 가파른 산길에 눈은 무릎까지 빠져 아이젠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어느 장난스런 이들이 비닐로 미끄럼을 타며 내려갔는지 등산로 일부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저 모롱이만 돌면 보이겠지 보이겠지 하고 내려온 게 몇 시간인지. 그러나 등산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도 구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지도 않았던 포장도로가 다시 나타났고 더군다나 그 길은 구불구불한 오르막이어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천태종 본산 구인사는 과연 그 규모와 시설이 놀랄 만큼 컸다. 좁은 면적을 최대한 살려서 지은 건축양식에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어느 건물에선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염불이 개울물 소리 같았다.'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神신에 이른다'는 말이 생각난다. 저 염불소리의 주인들은 저마다의 신에 이르려 하고 있다. 자신이 믿는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소원하고 기도한다. 그 정성이 하늘에 이르면 운명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형태의 삶도 나름대로 진지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나와 인생관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할 필요도, 나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돌아설 필요는 없다. 형태는 달라도 삶의 본질은 같은 지도 모르니까.
새삼스럽게 너그러워지는 마음이다. 역시 산에서 배우는 게 많다.
'날마다 산을 쳐다보면서 사람은 그 높이를 그리고, 그 무게를 배우며,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 변하지 않음을 벗하는 것이다.'
오늘 산행은 참 행운이었다.
눈길을 걸으며 별사태가 계속되는 밤을 걸어서 행복했고, 더 없이 깨끗한 일출을 볼 수 있어 더더욱 행운이었다. 신년 초의 소백산 종주는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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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새벽 한 시, 운문재를 넘었다. 깊은 어둠이 웅크린 산길을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에 의지해서.
구비구비 돌아가는 운문재는 상처 많은 젊은 날처럼 울퉁불퉁 비포장 길이었다. 평탄한 길만 달려온 인생에도 가끔은 이렇게 느닷없는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불빛에 잠깐씩 몸을 보여주곤 달아나는 나무들, 어둠 속에 그들을 남겨놓고 달리는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운문사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떤 유혹에도 마음을 열지 않는 비구니처럼.
절 옆으로 난 길을 따라 邪離庵사리암을 올랐다.
숲으로 들어서자 알싸한 수풀냄새가 와락 안겨왔다. 캄캄한 어둠, 손전등도 없이 산길을 걸었다.
발끝으로 더듬어 걷는 더딘 걸음 사이로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신도들의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 깊은 어둠 속에 깨어 있게 하는 것일까? 간절한 염원, 아니면 회한의 눈물일 수도 있겠지.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
사리암에는 끊임없이 나반존자를 외는 신도들이 백 배, 삼백 배, 천 배를 계속하고 있었다.
석가부처 열반 후 미륵부처가 출현하기 전까지 이 세상을 주재한다는 나반존자. 그는 열반을 하지 않고 살아서 미륵불을 기다리며 현존한다고 한다.
젊디젊은 여자가 연꽃 같은 절을 올린다. 등에 업힌 아이를 내려놓고 간절하게 올리는 그녀의 기도는 무엇일까?
현세에 이루기 힘든 소망을 신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 나도 불현듯 그 무리에 끼고 싶다. 막막한 절망을 만날 때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일까. 신앙은 그 자체로서 이미 구원이요 희망인지도 모르는데.
운문사 새벽 예불을 보러 캄캄한 어둠 속을 달려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적막한 밤길을 헤매는 짐승처럼 내 영혼은 외로움에 지친 것이 아닐까. 어딘가 깃들 곳을 찾는 젖은 날개의 새처럼. 행복한 일상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찾아 나는 이 밤 그 먼 길을 달려온 것일까?
3시에 시작되는 운문사 새벽 예불을 보았다.
2백 명이 넘는 학승들이 모여 올리는 예불, 그 장관을 기대했으나 어쩐 일인지 비로전에는 비구니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2백여 비구니들의 염불 소리가 비감 미의 극치를 이룬다고 했는데… 스님들의 무반주 합창 염불은 기대만큼 장엄하지도 비감하지도 않았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처럼 조금은 스산하고 쓸쓸하게 들렸다 고나 할까.
새벽 예불 전의 도량석을 보지 못했다. 비구니들이 법당과 탑 주위를 줄지어 도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사리암에서 내려온 시간이 좀 늦었던 탓일까?
제 키의 두 배가 넘는 커다란 법고 앞에서 천천히 북을 울리기 시작하는 비구니. 돌아선 그녀의 뒷모습에서 無念無想무념무상의 표정을 본다.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북소리는 時空시공을 초월해 울려 퍼진다.
북소리가 잦아들고 大鍾대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속세에서 산사의 새벽 종소리를 들으면 왠지 막연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긴 여운이 끊길 듯 말듯 다시 울리는 종소리는 지옥의 중생들을 건지기 위함이라 했다.
곧 이어 물 속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목어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 날짐승의 제도를 위해 운판을 치는 쟁쟁한 소리…
비로전에서는 쇠북이 울리고 스님들의 독경과 목탁소리가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먼 숲에서는 피울음 우는 소쩍새 소리, 개울가에는 저 혼자 깊은 밤을 흘러온 시냇물의 쓸쓸한 독백. 5월 산사의 신 새벽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보일 듯 말듯 어둠이 내주는 자리로 돌아오는 새벽빛은 아직 검푸렀지만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이미 끝나고 있었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활짝 열린 문밖으로 나왔다.
엉덩이가 푸짐한 여인이 편하게 앉은 모습 같은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뒤돌아보았다. 저 소나무가 같은 자리에서 수백 년 동안 들어온 스님들의 염불소리. 그 염불에 영험이 있다면 이제 나무도 인도 환생할 때가 되지는 않았을까?
절 집 아래 가게 주인을 깨워 칼국수를 시켰다. 부수수 눈 비비며 일어난 노파는 잠 속의 도솔천을 떨치고 금방 고해의 현세로 돌아왔다.
밤이슬을 맞으며 서성인 탓인지 몸이 추웠다. 따끈한 국물이 빈속에 들어가자 설탕이 녹 듯 온 몸이 나른해졌다.
새벽 미명 속을 달려 다시 운문재를 넘었다. 맑은 공기가 그리워 차창을 내리는 순간, 명랑한 웃음 같은 새소리가 차안으로 흘러들었다.
문득 차를 멈추고 숲의 소리를 들어본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어린 새들이 둥지에서 칭얼대는 소리, 아카시아 꽃잎 벌어지는 소리, 연달래 피는 소리.
이 많은 소리들이 그 어둠 속에 깃들어 있었구나.
태화강을 끼고 차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커다란 홍시감 하나가 대밭 위로 불쑥 떠올랐다. 잘 익은 홍시감은 터질 듯 터질 듯 위태하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도 잠시, 해는 금방 눈부시게 창공으로 떠올라 나를 허망하게 했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잠시 잠깐 우리들 눈앞을 스쳐갈 뿐인가. 느끼는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운문사 새벽 예불은 나에게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다. 2백여 비구니들의 무반주 합창 염불의 비감 미는 상상 속에 살아 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운문사에 가리라. 내 상상의 완성을 위해서. 그리고 그 깊은 밤, 불전에 엎드려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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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시작한 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고 가는 등산로에서 서로 마주치면 '수고들 많으십니다' 잠깐 인사하고 헤어지는 그 짧은 인연. 처음 만나도 낯설지 않고 왠지 정이 가는 얼굴들은 번화한 거리에서 스치는 옷자락과는 정감이 사뭇 다르다.
그를 본 것도 산행 중의 숱한 인연처럼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스치고 지나가면 얼굴조차 잊어버릴 사람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우리들은 간월산 정상을 거쳐 하산 길 파래소 폭포 아래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 폭포에서 땀을 식힌 뒤 배냇골로 하산하자는 게 우리들의 계획이었다.
폭포의 물이 너무나 짙푸르다고 붙은 이름, 파래소에서 우리 일행은 배낭을 풀고 등산화를 벗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십 미터 넘는 낭떠러지를 흘러내린 물이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 밑에 서 보았다. 머리 위로, 등줄기 위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는 시원하다기보다 아플 지경이었지만, 고통과 함께 오는 짜릿한 쾌감에 몸을 맡기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었다.
폭포 둘레는 백 미터쯤 될까. 수심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푸른 물은 한순간 나를 섬뜩하게도 했지만 물밑 세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이기진 못했다.
준비해간 수경을 쓰고 파래소 위를 유영하면서 물밑을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햇살이 맑은 물 속으로 그대로 꽂혀들고 있었다. 시계는 수심 3∼4미터 정도로 아주 밝았지만 이상하게도 햇살이 물 속에서 회오리처럼 둥글게 돌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물 속을 가늠하면서 파래소를 유영하다가, 또 폭포의 물을 등줄기로 맞다가 물 속에서 나왔을 땐 7월의 햇살이 설핏 기울고 있었다.
젖은 옷을 숲 속에서 갈아입고 하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득 그가 나타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은 검게 그을려 번질거렸고 떡 벌어진 어깨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넘쳤다. 산소통을 메고 올라온 걸로 봐선 스쿠버다이버인 듯했다.
"혹시 물 좀 남은 거 있습니까?"
숨이 턱에 닿아서 그가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가파른 산길을 15킬로그램이나 되는 산소통을 메고 왔으니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숨이 가빴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수통의 물을 건네주었다. 그는 단숨에 물을 들이키고 맨몸으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더위와 흐르는 땀 때문이었으리라.
그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 몇 명이 수중 촬영장비들을 가지고 파래소로 왔다. 그들은 모 방송국 여름 특집물 제작팀으로 수중생물의 서식상태를 찍고 있다고 했다.
슈트를 입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그와 카메라맨을 보면서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며칠 후 그들이 찍은 파래소의 깊은 물 속을 텔레비전에서 감상하리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들이 찍은 파래소의 비경에 앞서 나는 그들의 사고 소식을 먼저 듣고 말았다. 바로 그날 밤 아홉 시 지방 뉴스를 통해서였다. 처음엔 실종으로, 다음엔 사망으로 보도된 뉴스를 보고 나는 물 속에서 전류를 만진 것 같았다.
사건 발생 시간은 우리가 하산한 직후, 그들은 두 번째 잠수에서 더 이상 물위로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파래소 폭포 아래는 소용돌이가 심해 해마다 익사 사고로 한두 명씩은 꼭 목숨을 잃어왔다고 아나운서는 말했다.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던 바로 그 사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땀을 흘리던 건강한 남자가 죽다니.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식은땀이 흘렀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물을 얻어 마시며 고맙다고 씨익 웃던 그 잘 생긴 웃음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서른 아홉, 하필이면 나와 똑 같은 나이였다니…
울부짖는 그의 아내와 그의 영정이 차려진 빈소를 보았다. 바로 어제 보았던 그 얼굴이 영정으로 모셔져 있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스쿠버로 단련된 그 건장한 체격도 죽음 앞에선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파래소 수중 촬영은 그날이 처음도 아니었고 그는 며칠째 수중 촬영을 돕기 위해 물밑에 들어갔다는데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사고를 당할 게 뭐란 말인가?
푸르디푸른 나이에 그의 명이 끝이라는 아무런 암시도 없이 그렇게 허무하게 갈 수 있는 것일까? 누군들 자신의 삶이 끝나는 순간을 알 수 있을까만, 그 가파른 산길을 목이 타도록 걸어 올라와서 물 속에 잠기고 말다니, 운명의 시나리오라면 너무나 잔인한 게 아닐까.
나는 며칠을 악몽 속에서 보냈다.
내가 유영하던 그 물 속에서 두 남자가 죽었다. 아마 한 사람이 위기에 처하자 다른 사람이 구해주려다가 함께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도 모른다. 햇살이 회오리처럼 휘돌아 들어가던 물 속. 아, 그것이 바로 소용돌이였구나.
머리 속에는 그들이 죽음 직전에 본능적으로 저항했을 상황이 상상되어 괴로웠고 어쩌면 나도 그 물 속에 잠길 뻔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나를 섬뜩하게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심연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짙푸른 물 속을 겁없이 헤엄치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아, 우리들 인생엔 얼마나 많은 복선이 숨어있는 것일까. 물에 익숙하던 다이버가 물 속에서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함정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일까.
바로 눈앞에 닥쳐온 운명의 칼날을 보지 못하고 그 가파른 산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땀 흘리며 올라왔던 그의 수고로움은 얼마나 헛되고 무모한 것이었던가.
나에게 물을 청해 마시던 그 건강한 얼굴, 불과 몇 분 뒤로 다가온 죽음을 모른 채 물 한 모금이 다급했던 그. 나 또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언제 어디에 인생의 암초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장 눈앞의 갈증을 씻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는 건 아닐까?
세상살이 너무 가까운 것만 보고 살면 먼 데 있는 것이 안 보이는 법일 진데.
그날 이후 당분간 산행을 쉬고 있다.
겁 없이 오르내리던 산길, 멋모르고 뛰어든 파래소 폭포의 짙푸른 물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마지막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파래소에 가라앉아 버린 그 젊은 혼이 나를 자꾸만 붙잡고 있다.
‘자만하지 마십시오. 인생엔 생각지도 않은 복선이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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